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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 프로필


나경원 국회의원
출생 : 1963년 12월 6일, 서울
소속 :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종교 : 천주교 (세례명: 아셀라)
의원 선수 : 4
의원 대수 : 17·18·19·20
지역구 : 서울 동작구을
당내 직책 : 원내대표
배우자 : 김재호(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자녀 : 1남 1녀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 수료  외 3건
수상 : 2017 제4회 대한민국 나눔봉사대상 장애인복지부문  외 8건
경력 : 2018.12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외 28건


나경원 경력

부산지방법원 판사

인천지방법원 판사

서울행정법원 판사

한나라당 장애인복지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 학력

계성초등학교

숭의여자중학교

서울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제법학 박사 수료



1963년 12월 6일 홍신학원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나채성의 4녀 중 장녀로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본관은 나주이며,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출신이다.


계성초등학교 시절 아동극 연출 지도 교사로 온 배우 서인석에게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어 연극부 활동을 하기도 했다. 숭의여자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여자고등학교 시절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체 557명 중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였으며, 30세가 되던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7]같은 학교 동기인 김재호와 결혼하였고, 1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다운증후군이 있다


사법연수원 24기 를 10위권 이내의 성적으로 수료하고 1995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어 4년간 근무하였다. 이후, 1999년 인천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행정법원까지 총 7년 6개월간 판사로 재직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선 기간, 이회창의 요청에 따라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판사가 판사를 그만두고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추미애 이후 두 번째다. 나경원은 ‘소신 판결을 해온 이회창 후보를 법관시절부터 존경해 왔다’고 밝혔다.


2003년 3월 이회창이 대선에 패배하자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7월 법무법인 바른에서 실제 변호사 업무를 하진 않았지만, 주요 구성원이었다.


2004년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했다. 3년 후인 2007년의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그의 당선에 기여했고,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등 경쟁 중인 후보자들 측에서 제기했던 이명박 후보의 BBK 비리 의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주어는 없다"라는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난히 당선되면서 유력한 여성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1년 전보다 구체적으로는 후술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전까지는 차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최고위원 회의에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을 당에서 총력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하였다가 유승민 최고위원에게 반박당하였다.


2011년 후반기 서울특별시의 무상급식 논란과 이를 둘러싼 주민투표가 무산된 과정에서 여당 소속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자진 사퇴하여 실시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참패했다. 


결국, 박원순은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53.4%의 득표율을 얻어(2,158,476표),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7%p 가까이 되는 득표율로 누르고 압승하면서 제35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문제는 단순히 선거 하나를 패배한 정도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미지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점이었다. 박원순 후보 측과 일부 언론들로부터 제기된 '호화 피부시술' 의혹, '초선 의원 시절인 2004년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 참석' 등의 행적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사건사고 항목을 참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당시의 여러 의혹 제기로 나경원은 그동안 쌓아 온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다. 결국 이듬해인 2012년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출마조차 못했고, 한동안 정치권에서 멀어져야 했다.


3년 후인 2014년 7월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구에 한나라당의 후신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정의당의 노회찬을 상대로 단 929표 (1.3%) 차의 신승을 거두어 당선,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이로써 17~19대 연속으로 3선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된 유기준의 뒤를 이어 19대 국회 후반기의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6년 4월의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지역구는 현재 19대 국회에서와 같은 동작 을이었으며, 2016년 3월 12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로부터 '동작 을' 후보로 공천받았다.

선거결과 약 43%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다만 자신이 소속한 여당 새누리당이 원내정당 1위에도 못 미치면서 총선 패배가 이번 당선에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있고 오히려 새누리당 수도권 4선이라는 본인의 경쟁력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 양립하고 있다.


2016년 12월 27일 비박계 29명 의원이 탈당하는 와중에 보류선언을 해서 네티즌들로부터 큰 질타를 받고 있다. 나경원 신당行 보류, 정강정책 등 노선 갈등 때문인 듯 그러나, 이혜훈 의원 등에 따르면 신당의 원내대표 자리를 보장받지 못해 보류했다는 설과, 전날 밤 울면서 김성태에게 전화한 것으로 보아 압력을 받고 있다는 설 등이 있다.



12월 9일, 여의도 바닥에서 많이 언급되던 나경원 의원과 김학용 의원의 2파전으로 확정되었다. 나경원 의원이 친박계 대표로, 김학용 의원이 복당파 대표로 원내대표 선거를 치루게 되었다. 최근 친박계가 당을 지킨 사람들이라며 자신들을 수당파란 프레임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부터 나경원 후보에게 유리하게 가는 거 아니냐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원내대표 선거란 것은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거지만, 친박계 수가 적은 게 아니라 오히려 많은 편이고 친박계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상황이니만큼 불리하지 않단 것만큼은 확실하다.


12월 11일 의원총회에서 유리한 상황에 걸맞게 68표를 득표하여 35표를 얻은 김학용 의원을 압승,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친박이 밀어준 후보가 복당파 지지 후보를 압도해서 이겼단 것으로 인하여 당대표 선거는 더 치열하게 부딪칠 것으로 전망된다.


나경원 딸 성신여대 부정입학 의혹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2016년3월17일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의 딸인 김아무개씨가 2012학년도 성신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했지만, 학교 측이 이를 묵인하고 특혜를 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며 부정 입학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나경원은 이를 보도한 뉴스타파 황모 기자를 고소했고 재판에 넘겨진 황모 기자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서정현 판사는 8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황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소 과장되거나 평가로 볼 여지가 상당하지만 허위 사실을 적을 것이라 볼 수 없다"며 "보도 내용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써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자위대 행사 참석

2004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위대 창립 50돌 행사를 열였을 때 나경원이 행사에 참석하여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나경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제가 국회의원 되자마자였는데 일본 대사관에서 하는 행사라서 가야된다고 해서 갔는데 가서 보니까 자위대 창립 행사라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 대사관의 방명록 이런것을 보시면 제가 참석 안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라고 밝히었다. 이후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하여 "자위대 행사에 참석했다는 비난의 글이 많다. 정황은 이렇다", "초선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행사 내용을 모른 채 갔다 현장에서 뒤늦게 알고 되돌아 왔다", "처음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 답변한 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변명처럼 보일까 우려되기도 했고, 행사 내용을 미처 살피지 못한 저의 불찰도 있었기 때문", "오늘 트위터에 속 시원하게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글을 드린다"라고 밝히었다. 하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는 “서울의 중심에서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 행사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참석한다는 게 말도 안 돼 국회의원실에 직접 공문을 보냈다”며 나경원이 무슨 행사인지 모르고 갔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해명이라고 반박하였다. 윤 대표는 지난 해 나 의원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50만 국민 서명’에 함께 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윤 대표는 “초선 의원 때에 비해 지금은 위안부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학재단 관련

MBC 방송에서 라디오 인터뷰 도중에 홍신학원과 관련된 질문을 받자, 나경원은 "아버지의 학교고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홍신학원은 아버지 학교임과 동시에 나경원 후보가 2001년부터 현재까지 이 학교의 이사로 있었다. 정봉주 전 의원은 “나경원 후보가 심각한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아버지 학교니까 나한테 얘기하지 마라, 이건 말이 안 맞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봉주 전 의원은“나경원 후보가 ‘그 학교는 감사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라며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화곡중·고, 화곡여상을 지칭했는데, 화곡중·고등학교는 이미 우리보다 앞선 16대 국회 때 국회에서 감사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한 50일 동안 시간을 끌다가 결국 그 학교만 유일하게 감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왜 제출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행정실장이 감사 자료를 불태워버렸다고 국회에 직접 해명을 할 정도였다. 학교 자료를 불태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학교다”라고 지적했다.


SNS 셀프 지지

2011년 10월 15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스스로를 지지하는 ‘자화자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자신이 작성한 글을 리트윗(재인용)해 “콘텐츠가 있는 공약과 정책 정말 멋집니다” 등 자신을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에 네티즌들이 ‘나르시즘 나경원’ ‘자화자찬도 유분수’ ‘알바의 실수인가’ 등의 지적을 하자 나경원 측은 2011년 10월 16일 해당 트위터 글을 삭제하고 “확인 결과 시스템 간에 충돌이 일어나 계정 연동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현재 오류를 바로 잡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1년 10월 20일 한 트위터 사용자가 나경원 트위터 멘션 오류에 대해 트위터 본사에 문의한 내용을 온라인에 게시했는데 트위터 본사 답변에 따르면 “나 후보 측의 트위터 글은 트위터 내부 오류나 장애가 아니다”라며 “후보자는 트윗을 포스팅 하기 위해 외부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이어 “이같은 오류나 장애는 트위터가 아닌 이 어플리케이션에서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며 트위터 계정 연동 오류가 아니라고 밝혀 '계정 연동 시스템 오류'라던 나경원의 해명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나경원 선거 결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한나라

7,613,660 표

35.76%

비례대표 11번

당선

초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서울 중구

한나라

23,609 표

46.70%

1위

당선

재선

10·26 재보선

35대

시장

서울특별시

한나라

1,867,880 표

46.21%

2위

낙선

민선 5기

7·30 재보선

19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을

새누리

38,311 표

49.90%

1위

당선

3선

총선

20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을

새누리

44,457 표

43.41%

1위

당선

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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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해찬 국회의원 프로필


이해찬 국회의원, 전 정무직공무원
출생 : 1952년 7월 10일, 충남 청양군
소속 : 더불어민주당,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지역구 : 세종특별자치시 세종
의원 선수 : 7
의원 대수 : 13, 14, 15, 16, 17, 19, 20
학력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외 1건
부모 : 이인용(부), 박양순(모)
배우자 : 김정옥
자녀 : 이현주(딸)
수상 : 2003 청조근정훈장  외 1건
경력 : 2016.5.30 제20대 국회의원  외 19건


이해찬 사이트

이해찬 블로그 : http://blog.naver.com/lhc21net

이해찬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7suncider/

이해찬 트위터 : https://twitter.com/lhc21net

이해찬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lhc21net

이해찬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HKaDaM6NexRFfj6z9Gydiw


이해찬 학력

용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섬유공학 / 학사중퇴)

서울대학교 (사회학 / 학사)



이해찬 경력

돌베개출판사 대표

평화민주당 원내부총무

민주당 당무기획실장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제38대 교육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제36대 국무총리

민주통합당 대표


이해찬은 1952년 7월 10일에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아버지 이인용과 어머니 박양순의 3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고향은 충주이다. 그의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14대 왕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의 14대손이다. 아버지 이인용은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해방 이후 청양면장을 지냈으며 4.19 혁명 때까지 재직하였다.


1965년에 청양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1968년 덕수중학교를 졸업했다. 용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71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에 진학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하고 이듬해인 197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를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유신 선포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 청양에 내려왔는데 아버지가 "나라가 이모양인데 학생들이 데모도 하지 않느냐"며 질책을 받고 바로 상경하여 학생운동 써클에 가입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그는 직접 막노동을 하며 생계와 학비를 마련해 나갔으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어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후 이해찬은 생계를 위해 무역회사에 다니기도 하고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차린 번역실에서 번역을 하기도 했으며 엠네스티 한국지부 상근자로 일하다 평소 관심이 많던 출판일을 익히려고 범우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1978년 사회학과 학술모임에서 만나 사귀어 오던 김정옥과 결혼하고 광장서적을 설립하였다. 출판사 '한마당'과 '평민서당'을 설립했으나 불온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등록을 취소당하여 돌베개 출판사를 설립하고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출판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이해찬은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수감 2년 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되었다. 군사 독재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입학하고 14년만인 1985년 8월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87년 이해찬은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6월 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았다.


1987년말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내고, 대선 때 김대중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 관악구에서 평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여 당선된 이후 연속 5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개혁정치모임 이사에 선출되었다.

이해찬은 13대 국회 노동위원회에서 노무현, 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활약했다. 1988년 5.18 광주청문회 당시 국회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간사에 선출되었다. 당시 5공 관련자들을 집중추궁하여 청문회 스타의 한사람으로 떠올랐다. 그 해 이해찬은 평민당 원내부총무에 선출되었다.


1991년초부터 그는 정치 개혁론을 주장했고, 정치 개혁을 위해서는 야당부터 쇄신해야 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이해찬은 『신동아』 1991년 7월호에 광역의회 선거를 앞두고 "이 야당으로는 정권 교체 못한다"는 글을 기고했다. 이해찬은 그 글에서 김대중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는 입당 때부터 큰 책임감을 느끼며 추진한 야권통합운동과 당내 민주화가 좌절되면서 1991년 6월 탈당했다가 야권이 통합된 뒤 다시 입당했다. 이 일로 김대중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항의와 비난이 가해졌다. 그러나 김대중은 나중에 이해찬을 다시 받아들였다.


1992년 민주당 당무기획실장, 1993년 민주당 환경특별위 위원장을 지냈다. 1994년에는 안기부의 사찰과 야당인사 탄압에 관련된 비밀장부를 발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5년 7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이해찬은 민주당 조순 서울시장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조순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1995년 7월 그는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에 발탁되었다. 5개월만인 1995년 12월 당의 부름을 받아 서울시 정무부시장직을 사퇴하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선기획단장을 맡았다.



1995년 9월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이해찬은 입당하여, 1996년 5월부터 1997년 5월까지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아 자민련과의 정책공조를 이끌었고, 1997년 7월 새정치국민회의 제15대 대통령선거기획본부 부본부장에 선출되었다. 12월 대선에서 김대중이 이회창을 39만여 표의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12월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분과 간사에 임명되었다.


1998년 2월까지 이해찬은 15대 대선기획본부 부본부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분과담당 간사로 활동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입각, 이해찬은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교육부 장관 재임 기간 동안 주로 고교 평준화, 연합고사 폐지, 보충수업 폐지 등의 개혁안을 추진했다. 교원의 촌지 근절 및 교원 뇌물 수수 집중 단속으로 교직 사회 비리 근절을 꾀하였고, 입시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성급한 개혁으로 '이해찬 세대'를 대거 양성하여 그들이 수능에서 참패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대학교 입시 목적으로 고등학교에서 강제로 시행되던 야간 자율학습과 월말고사, 학력고사, 모의고사 등을 전면 폐지하였고, 중학교에서도 1995년 폐지 이후에도 부분 잔존하던 연합고사와 학력고사, 모의고사 등을 폐지하였다. 또한 각급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에 대한 불시 감사를 시행하여 촌지교사들을 해임, 파면하고 교사들의 성과제를 도입하는 등의 정책은 교육부 장관 재직 당시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에 기반한 정책이라며 일부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한다. 한편으로 그의 개혁안에 반발하는 일선 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들의 반발과 숱한 비난 공세 등이 역시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으나 강행하였다. 교원 정년을 만65세에서 만62세로 단축하는 등의 교원개혁을 추진하고 완료하였다.


또한 어린이나 청소년일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무심하게 넘어가던 학교폭력을 최초로 단속하였다. 학교폭력 가해자, 이지메 왕따를 주도한 학생, 학생 조직폭력배인 일진, 불법 폭력 서클을 집중 단속하게 하였으며, 이때 단속된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과 폭력 학생들에게 징계와 퇴학 등의 강력한 처벌을 하여 학교폭력을 근절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학교폭력 근절에 대해 교사들과 기성 사회에서는 가해 학생들의 인권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그가 교육부 장관직에서 물러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도 주춤하게 되었다.


1999년 정년 단축조치로 교원 2만 명을 교단에서 퇴임 시켰다. 교원 정년 단축으로 고령 교사들을 퇴임시킨 수는 소수였다는 이유와 함께 시대변화에 알맞게 대처하지 못하는 교사들을 교단에서 내보냈다는 점을 들며 일부 시민단체들은 그를 지지했다.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사제관계의 붕괴와 시간적여유를 두지않은 급진적 개혁이라는 교육 관료 집단과 교원 단체와 일부 교육단체들의 심한 반발과 비판에 직면했다. 이 정책의 이면적 바탕을 두고 여전히 논란이 진행 중에 있다.





200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해찬은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반에 들어가,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친노무현 진영에서 활동하였으며, 2003년 11월 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에 가담하였고,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기획준비단 단장이 되었다. 11월 11일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입당, 창당 이후 그는 열린우리당 국회개혁추진단 단장에 선출되었다. 그밖에 한일의원연맹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2004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노무현 탄핵안 제출 당시, 유시민 등과 함께 원내에서 강력 항의, 반발하였으나 노무현 탄핵을 막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청문회 스타, 교육 개혁 정책과 탄핵안 저지 등으로 알려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2004년 9월 9일 조사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정치인 가운데 호감도는 정동영 34.6%, 이해찬 22.0%, 김근태 15.4% 순으로 나오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노무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이 사임한 후 이해찬은 국무총리로 발탁, 청문회를 무난히 넘기고 총리에 임명되었다. 국무총리 재직 당시, 19년간 미결 과제로 남아있던 원전폐기물처리장 설치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였고, 공공기관 지방이전안을 발의, 추진하였다. 2005년 8월에는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양양군 지역에 산불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국무조정실 직원들을 데리고 경기도 포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하러 갔다가 언론의 집중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산불대란 골프 사건은 조기에 수습되었다.


책임총리제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해찬 전 총리의 관계는 과거와 다른 측면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매주 열리는 국무회의에 한 달에 한 번꼴로만 참석해 국무회의 부의장인 이 전 총리가 의장 역할을 하도록 했다.



2012년 6월 9일 열린 민주통합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이해찬은 경쟁상대인 김한길 후보를 누르고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해찬은 "이제 정권교체를 향한 대장정이 시작됐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과 당원의 뜻을 하나로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새누리당의 매카시즘에는 단호히 맞서서 싸우겠다. 종북주의, 매카시즘 대신 정책경쟁하는 그런 선거로 임해줄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한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로인해 신 매카시즘 논란이 불었다. 이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관련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지도부 총사퇴를 결의하고 민주통합당 당 대표 직을 사퇴했다.

2017년 5월 18일 중국 특사로 임명되어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다.

2018년 7월 20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튼튼하게 뒷받침하겠다"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였고, 8월 25일 42.88%의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이해찬 저서

《광주민주항쟁》, 돌베개, (공저),1988.

《민주와 통일의 길목에서》, 함께사는 세상, 1989

《열두 편의 가슴시린 편지》, 행복공작소, (공저),2005.

《청양 이 면장 댁 셋째 아들 이해찬》, 푸른나무, 2007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오마이북, (공저), 2010

《광장에서 길을 묻다》, 동녁, (공저), 2011


이해찬 역서

《사회학적 상상력》, 돌베개, C. 라이트 밀즈 저

《세계환경정치(한국어판)》

《돔 헬더 까마라 - 정의와 평화의 사도》,한길사, 조 세드 브루키르 저, 1979.


이해찬 역대 선거 결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3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평민당

39,950 표

31.18%

1위

당선

초선

총선

14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민주당

64,035 표

44.69%

1위

당선

재선

총선

15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국민회의

54,049 표

44.75%

1위

당선

3선

총선

16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새천년

48,751 표

47.48%

1위

당선

4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우리당

49,673 표

41.12%

1위

당선

5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세종특별자치시

민주당

22,192 표

47.88%

1위

당선

6선

총선

20대

국회의원

세종특별자치시

무소속

46,187 표

43.72%

1위

당선

7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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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 후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문희상 프로필


문희상 국회의원
출생 : 1945년 4월 14일, 경기 의정부시
소속 :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 경기 의정부시갑
의원 선수 : 6
의원 대수 : 14·16·17·18·19·20
배우자 : 김양수
가족 : 동생 문인숙, 동생 문재숙, 조카 이슬기, 조카 이하늬
종교 : 천주교(세례명: 바오로)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졸업  외 3건
수상 : 2015 대한민국 모범국회의원대상 최고대상  외 1건
경력 : 2016.5.30 제20대 국회의원  외 15건


문희상 사이트

문희상 공식사이트 : http://www.moonhs.net/

문희상 블로그 : http://blog.naver.com/moonhs1001

문희상 트위터 : https://twitter.com/moonhstw

문희상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moonhsface


문희상 학력

1958년 양주국민학교 졸업

1961년 경복중학교 졸업

1964년 경복고등학교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학사

1971년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6기



문희상 경력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중앙회장

평화민주당 행정위원

새정치국민회의 상임위원

청와대 정무수석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제27대 대통령비서실장

국정자문회의 의장

제5대 열린우리당 의장

제18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1945년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정부 지역의 대지주였다. 말하자면 금수저.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학생운동에 투신, 여러 번 감옥을 들락날락거렸다. 이 때문에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그만두고 1980년대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김대중 휘하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인다. 의정부시가 원래 실향민이 많아서 레드 콤플렉스가 심한 지역인데다가, 아버지 역시 열혈 박정희 지지자로서 매우 보수적인 인사였기 때문에, 당시 "빨갱이"로 매도되던 김대중 밑에서 일하는 아들의 행동에 대해 대노했다고 한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이 총재로 있는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김문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홍문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대중이 당선된 날 아버지 묘소에 가서 "아버지! 제가 간 길이 옳았죠!" 라고 오열했다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자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 5선 의원이 되었다. 이어 열린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하고 지도부가 사퇴하자 첫번째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두번째로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정세균 상임고문, 원혜영 의원과 더불어 당내 여러 인사들과 친화력이 높아 당내 대표적인 관리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셋 다 모두 범 친노계 인사로 꼽힌다.


2014년 말 땅콩회항 사건이 터진 가운데 2004년, 처남의 대한항공 취업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희상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컷오프됐는데 "도대체 왜 짤린 거지?"가 대체적인 전문가의 의견이다. 취업 청탁 의혹이 있지만 이미 12년이나 지난(...) 문제일 뿐더러, 문희상의 지역구에 딱히 대체할 인물도 없어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조차도 분개했다고 한다. 결국 문희상은 원래 지역구에 '전략공천'되었다. 결국 6선에 성공했다.


야권의 승리와 더불어서 2016년 4월 현재 20대 국회의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계파색이 옅고 이제 나이도 많아서 이석현, 정세균 의원보다 정계은퇴에 대한 부담도 크기 때문. 다만 2004년 취업청탁에 대한 구설수가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의장직을 건 당내 경선에서 정세균에게 패배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특사가 되었다. 사실 일본통까지는 아니여도 일본과 나름 연이 있는 인물이다.


5월 17일날 열린 일본과의 외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한일 양국, 한미일 삼국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위안부 합의가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특사의 성격을 지닌 만큼 재협상 등의 요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경우 회담에서 논의 되지는 않았지만, 추후 유지 여부는 새 정부가 정할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의정부시 행복로 근처에 위치한 숭문당의 창업주. 호는 정흥(正興)인데 사실은 개명 전 이름은 문정흥이었다. 야구인 김영조의 사위이며,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의 외삼촌이다.

대한민국의 제14대, 16대~20대 국회의원이며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에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두 번이나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거물급 인사다.현재 20대 국회의원 기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중 최고령 국회의원이다.



문희상 역대 선거 결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3대

국회의원

경기 의정부시

평민당

22,492 표

27.50%

3위

낙선

총선

14대

국회의원

경기 의정부시

민주당

40,171 표

38.66%

1위

당선

초선

총선

15대

국회의원

경기 의정부시

새정치국민회의

37,490 표

33.01%

2위

낙선

총선

16대

국회의원

경기 의정부시

새천년민주당

59,722 표

45.76%

1위

당선

재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경기 의정부시 갑

열린우리당

42,823 표

52.12%

1위

당선

3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경기 의정부시 갑

통합민주당

32,211 표

47.50%

1위

당선

4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경기 의정부시 갑

민주통합당

39,252 표

47.20%

1위

당선

5선

총선

20대

국회의원

경기 의정부시 갑

더불어민주당

38,739 표

42.84%

1위

당선

6선


경험살려 앞으로 자유당이 무슨 짓 할지 다 알려주는 문희상 ㅋㅋ


‘누가 손님일까’ 아베 총리 앞에서도 당당한 문희상 일본 특사[씨브라더_씨육수]



세월호 참사 막을 수 있었던 이유 (문희상의 눈물) ★ 공신 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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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국회의원 홍영표 프로필


홍영표 국회의원, 대학교수
출생 : 1957년 4월 30일, 전북 고창군
종교 : 개신교
소속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지역구 : 인천 부평구을
의원 선수 : 3
의원 대수 : 18·19·20
소속 위원회 :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학력 : 동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외 2건
수상 : 2016 법률소비자연맹 종합헌정대상  외 14건
경력 : 2018.5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외 25건


홍영표 사이트

홍영표 블로그 : http://blog.naver.com/youngvote814

홍영표 트위터 : https://twitter.com/YoungpyoHong

홍영표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ypbupyeong


홍영표 학력

고창초등학교 졸업

고창중학교 졸업

이리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철학과 학사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홍영표 경력

대우그룹 노동조합협의회 사무처장

참여연대 정책위원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국무총리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

새정치민주연합 인천시당위원장


1957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익산 이리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대우자동차에 입사하다가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2001년부터는 시민운동을 주도했고, 2002년 무렵에 유시민을 만나 개혁국민정당에서 조직위원장을 맡아 당시 노무현 후보 당선에 일조를 하게 된다. 이후, 개혁국민정당이 열린우리당에 합류할 때, 같이 입당,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평구 갑 지역 출마를 노렸지만, 문병호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하면서 출마를 접었다. 이후, 이해찬 총리 임명 당시 총리실의 권한이 강해지면서 총리실 비서관으로 임용되었고, 이해찬 총리가 사퇴한 후에는 한미 FTA 지원단장으로 임명되어 참여정부에서 계속 활동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인 홍미영 의원을 제치고 부평구 을 지역의 공천장을 받아 출마했으며 낙선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구본철 국회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에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을 맡아 인천 지역에서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20대 총선 후에 돌연 사임했다. 친노계 3선 중진 의원으로써 원내대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친노 세력의 당 장악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으며 오히려 20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6월 13일 제20대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표적인 친노무현계-친문재인계로 분류되어온 정치인으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 뒷얘기를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서 기술한 저서 '비망록(2013년)', 지난 2016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 홍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당내 '친노' 진영이 뒷선으로 물러났다는 말까지 나왔으며, 2017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7표 차이로 우원식 의원에게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후 2018년 원내대표에 재도전하여 총 116표 중 78표를 득표하며 노웅래 의원을 40표 차이로 꺾고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취임 첫 행보로 단식 투쟁 중인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았다. 둘 다 노동계 출신이고, 19대 국회 환노위에서 각각 여당 간사, 야당 간사를 맡아 노동 관련 법안과 정책을 조율했던 인연이 있는 만큼 김 원내대표가 홍 신임 원내대표를 반갑게 맞았다. 홍 원내대표는 건강 챙기라며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다만, 김 원내대표가 홍 원내대표에게 오후에 바로 협상하자고 말하자 아직 업무 파악이 안되었다고 협상을 뒤로 미루었다.


홍영표 역대 선거 결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8대

국회의원

인천 부평구 을

통합민주당

33,707 표

38.2%

2위

낙선

4·29 재보궐

18대

국회의원

인천 부평구 을

민주당

30,667 표

49.5%

1위

당선

초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인천 부평구 을

민주통합당

63,099 표

55.2%

1위

당선

재선

총선

20대

국회의원

인천 부평구 을

더불어민주당

54,974 표

43.8%

1위

당선

3선



문재인아들 물고늘어지는 신보라, 홍영표 빡쳐서 그만좀해라 지겹다 일침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신임 원내대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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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장 예비후보 양향자 프로필


양향자 정당인

출생 : 1967년 4월 4일, 전남 화순군

의원 선수 : 無
소속 :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학력 : 성균관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과 공학석사  외 2건
경력 : 2016.8 더불어민주당 여성최고위원  외 4건


양향자 사이트

양향자 블로그 : http://blog.naver.com/yangmpok2

양향자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yangja_sheep/

양향자 트위터 : https://twitter.com/hjyang0404

양향자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hyangja.yang.0404


양향자 학력

1986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2005 한국디지털대학교 인문학 학사

2008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


양향자 경력

1985.11 ~ 1992.12 : 삼성전자 반도체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

1993.01 ~ 2007.01 :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SRAM설계팀 책임연구원

2007.02 ~ 2011.01 :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RAM설계팀 수석연구원

2011.01 ~ 2014.01 :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팀 수석연구원, 부장

2014.01 ~ 2015.12 :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팀 상무

2016.01 ~ 2016.04 :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

2016.06 ~ :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서구을 지역위원장

2016.08 ~ :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

2016.08 ~ :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삼성전자에서 최초로 고등학교 졸업 학력 출신인 여성 임원을 지냈다. 2016년 1월 12일 더불어민주당의 외부 인사 영입으로 입당해 기자회견을 열고, "학력·성별·출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했다"고 살아온 길을 말했다.

제20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였고 그 후에도 광주에 남았다. 2016년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전당대회에서 재선 의원인 유은혜 의원을 꺾고 전국여성위원장 겸 여성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2018년 3월 12일 광주광역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하였다.


양향자 과거 선거 결과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20대 총선

국회의원 (광주 서구 을)

20대

더불어민주당

 31.5%

24,603표

2위

낙선



양향자, 완전히 새로운 광주 '광주 센트럴파크와 5·18타워 만들겠다 !!'



양향자 저서


'꿈 너머 꿈을 향해 날자, 향자'는 지역, 학력, 성차별의 벽을 넘어 글로벌 기업의 임원으로 성장하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 문재인 당시 대표의 끊임 없는 영입 제안에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기고 정치인 양향자로 지내온 2년의 시간, 이제 다른 정치인으로 살아갈 철학과 비전 등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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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경수 프로필


김경수 국회의원, 전 공무원
출생 : 1967년 12월 1일, 경상남도 고성군
소속 :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 경남 김해시을
학력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졸업  외 3건
수상 : 2016 제12회 대한민국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대상
경력 : 2016.5.30 제20대 국회의원  외 17건


김경수 사이트

김경수 블로그 : http://blog.naver.com/opensky86

김경수 트위터 : https://twitter.com/opensky86

김경수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opensky86

김경수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user/Gimhaero


김경수 약력

대통령비서실 공보담당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연설기획비서관

봉하재단 사무국장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


1967년 12월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에서 4남 1녀 중 장남이자 장손으로 태어나 6학년부터 진주시에서 성장했다. 진주동명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였고, 민주당 정치인들이 그렇듯 학생운동에 참여하여 3번 구속, 투옥된 바 있다.


1996년 학교 후배이자 동성동본인 부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이 있다. 결혼 조건이 정치 일은 해도 절대 출마는 안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남편이 민주당 국회의원이 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지도.


대학 졸업 후 1994년 신계륜, 임채정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 부국장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대통령 공보비서관 등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 정착하여 계속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좌했으며, 이때의 이력으로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인 '문재인의 운명'의 도입부를 보면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그날, 자고 있었던 문재인 당시 변호사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린 사람이 김경수 비서관인 것으로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낸다.



2011년 민주통합당에 입당,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 새누리당 김태호 후보와 맞붙어 48%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었으나, 아깝게 떨어졌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와 경쟁했지만 이번에는 꽤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하지만 전국적인 지명도 등의 차이를 감안하면 선전한 편이었고, 김해와 창원 성산구에서는 오히려 홍준표를 앞선다. 또 이 선거가 이후 김경수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도지사 선거 전부터 "미소천사"라는 전국적 팬클럽이 조직되었는데, 선출직 경험이 없는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노사모가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16대 총선에서 낙선하긴 했지만 이미 재선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다.


그 후 절치부심 끝에 밑바닥부터 김해 을 지역구에서 활동을 했고 민심을 얻어가는데 성공했다. 2012년 선거 때는 사실상 본인도 김해를 잘 알지 못했을 때 출마했다면 2016년 선거에서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서 선거에 임했다고 할 수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만기[6] 후보를 꺾고 무려 62.4%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더불어민주당 후보들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7] 김해시 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 민홍철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고, 함께 실시된 김해시장 재보궐선거 및 시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김해시에서 완승하기도 했다.


당선되고 난 뒤 민홍철 김해 갑 국회의원 당선자, 허성곤 김해시장 재선거 당선자, 김종근 김해시의원 보궐선거 당선자, 동시에 낙동강 벨트에서 살아남은 양산시 을의 서형수 당선자와 함께 봉하마을로 가서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봉하마을은 20대 국회부터 김해 갑에 속해있지만[9] 원래 김해 을 지역구였고, 김경수 의원의 뿌리 깊은 연고 때문에 아직도 다양한 행사 때 김경수 의원이 주최측의 역할을 맡는다.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유력한 경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계 일각에서는 경남도지사 자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후보가 필요한데, 민주당의 약세지역인 서부경남에 연고가 있는 김경수 의원이야말로 적임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김경수 본인 스스로 출마 의사가 전혀 없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고, 또 20대 총선에서 재도전해 당선된 지 이제 겨우 1년 조금 넘은 초선 의원인데다 여소야대 정국상 국회 의석 하나가 아쉬운 터라, 민주당 입장에서는 선뜻 김경수 카드를 내놓기가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김경수가 유력한 승리 카드라는 점은 인정하나, 본인이 자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보내려 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크다.


2018년 4월 2일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을 하였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남도지사 선거 출마로 의원에서 물러나는 점을 두고 지역구인 김해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김해 을)

민주통합당

58,157 (47.88%)

낙선 (2위)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새정치민주연합

559,367 (36.05%)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김해 을)

더불어민주당

70,600 (62.38%)

선 (1위)


국회방송 '국회의원25시' 김경수 의원편



[김어준의 파파이스#100] 4. 김경수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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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대변인 박수현 프로필(19대 국회의원)

박수현 전 공무원, 전 국회의원
출생 : 1964년 8월 14일, 충남 공주시
종교 : 천주교(세례명 : 안토니오)
학력 :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외 2건
수상 : 2016 국회의장 선정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국회의원  외 37건
경력 : 2017.5.15~2018.2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실 대변인  외 40건
의원 선수 : 1선 의원
의원 대수 : 19
정당 :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 前 충남 공주시


박수현 사이트

박수현 공식사이트 : http://www.workerpark.kr/web/

박수현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worker21c/

박수현 트위터 : https://twitter.com/workerpark

박수현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worker21c

박수현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user/workerpark


박수현 학력

금학초등학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 중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사회복지전공


박수현 경력

민주당 충남도당위원장

민주당 원내대변인 겸 부대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통상대책특별위원회 위원

충남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충남자연보호협의회 회장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비서실장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새정치민주연합 제3정책조정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실 대변인



1964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공주금학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와 부설고등학교를 차례로 졸업헀다. 이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에 들어가 학사과정을 밟다 학생운동으로 중퇴했다.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학사를 취득하였으며 대학원 행정학과에 진학해 행정학 석사를 취득하였다.


15대 대선 때 이인제 후보 캠프 및 국민신당 송파 갑 위원장, 15대 조영재 의원 보좌관 등을 거쳐 정치계에 입문했다. 그러다가 열린우리당이 생기는 시점에서 완전히 민주당 쪽에 정착했다.


2005년 공주-연기 지역의 재보선 때 열린우리당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당 지도부에서 보좌관 경력을 허위로 기재했다는 이유로 공천을 부결시켰다. 사실 진짜 이유는 당선 가능성이 썩 높지 않아서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처음 출마 기회를 날렸지만 일단 계속 당에 잔류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선거 캠프의 본부장을 맡아 충청남도지사 당선을 이끌면서 일약 안희정의 측근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충남도 정책보좌관을 역임하면서 경력을 이어 갔다.


2012년 5월 치러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남 공주시 지역구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또 국회 운영위원회의 위원이 되었고, 국회의원 취임 직후인 2012년 6월부터는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으로서 태안유류피해대책 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당내에서도 여러 직을 거쳤다. 2012년부터 2013년 5월까지 민주통합당 충남도당 위원장과 민주통합당 공주시지역위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에는 조직강화특위 위원, 전국직능위 부의장, 공공부문민영화저지특위 간사 자리에 올랐다. 공주시지역위 위원장, 충남도당 위원장도 거쳤다. 2013년 8월부터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이듬해 5월까지 활동하였다. 그밖에도 자연보호중앙연맹 충남협의회 회장과 충남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2013년 11월 민주당 원내부대표와 원내대변인 자리에 롤랐다.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후에는 당내 위원회의 기존 직무와 더불어 사대강사업조사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2014년 3월부터는 충남도당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3월부터는 당 원내부대표와 원내대변인을 맡았으며, 6월부터는 대표비서실장, 8월부터는 대변인 자리를 맡게 되었다. 11월에는 제3정책조정위원장에 임명됐다.


2015년 2월에는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대비한 당내 선관위 위원이 되었고, 3월에는 남북교류협력특별위 위원장을 지냈다. 2015년 5월에는 다시 한번 원내대변인에 임명되었고,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뒤로도 맡았다. 2016년 1월에는 비상대책위원장 비서실장을 맡았다. 2016년 4월 제20대 총선부터는 당내 전략홍보본부장을 역임하는 동시에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정진석 새누리당 후보에게 근소한 차로 낙선하였다. 전략홍보본부장은 총선 후에도 계속해서 지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를 불과 42일 남겨 둔 2016년 3월 2일 4·13 총선 선거구 획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선거구가 통합되는 충남 공주·부여·청양 지역 선거에서 19대 지역구였던 공주시에서는 승리했으나 부여군, 청양군에서 지면서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에게 3,300여 표차(3.17%)로 패해 재선에 실패하게 됐다. 재선 실패 후 더불어민주당의 전략홍보본부장을 맡았다.


아랫동네 사람이자 동갑내기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충남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안희정의 대리전 성격이 강했고, 박수현 본인도 "안희정의 입"으로 불렸을 정도였다.


한때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다. "민주당 내 경선에서 60%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이 붕괴할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함으로 문재인을 도리어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2017년 5월 16일, 문재인 정부의 출범 첫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


대변인 임명 이후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가운데, 7회 지방선거에서 유력한 차기 충남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충남에서 안희정 지사의 지지도가 높고 박 대변인이 안 지사의 측근인 만큼, '포스트 안희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차기 충남지사 선호도에서 1 ~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올 지방선거 때에는 천안 병 선거구 국회의원이면서국회 보건위원장인 양승조 의원, 아산시장 복기왕과 당 내 경쟁구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2018년 1월 13일, 그러니까 7회 지방선거 5개월 전에 이미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사유는 충남지사 출마. 국회의원이 아닌 공직자는 지방선거 출마 4개월 전까지 사의를 표명해야 하는데, 미리 사표를 제출해 놓은 것. 하지만, 후임자를 찾지 못해 1월 28일까지 청와대 대변인직을 수행했다. 


2018년 1월 29일 새로운 청와대 대변인으로 김의겸 전 한겨레 기자가 선임됐고, 2월 2일에 대변인에서 물러났다. 2월 5일에 충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다고 한다.


박수현 가정사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 박수현 의원은 당의 화합을 촉구하는 한 회의에서 자신의 숨겨둔 가정사를 고백했다.


당시 그는 "나는 아내도 없다. 두번 징역갈 뻔 했는데 아내가 견디지 못하고 나를 떠났다"며 "국회의원 당선된 뒤 아내를 6번 찾아갔지만 얼굴도 보지 못했다. 전해들은 얘기로는 내가 가장 힘들때 나를 버렸는데 어떻게 돌아오느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서울경부 - 공주 간을 운행하는 고속버스로 자주 출퇴근하면서 민심을 듣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 대변인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가 도지사에 출마한다면 아무래도 안 지사와의 관계가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면서도 “안 지사가 지난 대선 경선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성공한 도지사’란 배경은 저 뿐만 아니라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됐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수현 "안희정 효과, 누가 됐건 민주당 후보에 도움"


사실 안 지사와 박 대변인은 ‘친구’ 이상의 ‘동지적 관계’다. 박 대변인은 지난 두 번(2010년, 2014년)의 지방선거에서 안 지사 캠프 총괄선대본부장, 공동선대위원장을 각각 맡았다. 특히 박 대변인이 19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사실상 당내 유일한 '안희정 계'로 손꼽혔다. 

안 지사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에게 고배를 마신 박 대변인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천거했다. 또 사실상 3선 출마를 접은 시점에서 박 대변인에게 자신의 ‘후임’ 자리를 강권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박수현 선거 결과

연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2012

총선

19대

국회의원

충남 공주시

민주통합당

26,210 표

47.87%

1위

당선

초선

2016

총선

20대

국회의원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

더불어민주당

47,792 표

45.00%

2위

낙선

 



청와대를 나서며...다시 시작점에 서다 (ft.박수현 전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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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최교일 프로필


최교일 국회의원, 전 변호사
출생 : 음력 1962년 2월 28일, 경북 영주시
종교 : 개신교
가족 : 배우자 이홍채, 1남 1녀
의원 선수 : 1선 의원
의원 대수 : 20
정당 : 자유한국당
지역구 : 경북 영주시·문경시·예천군
학력 :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 졸업  외 3건
경력 : 2017.2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  외 12건


최교일 사이트

최교일 블로그 : http://blog.naver.com/choi_gyoil

최교일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gyoil.choi


최교일 학력

영주중앙초등학교

영주중학교

경북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


최교일 경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

기획재정위원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



1962년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사법시험 제25기로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1차장 검사,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법무부 검찰국 국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요직에서 활동하였다.


2013년 고향인 경상북도 영주시에 최교일법률사무소(법무법인 유한)를 개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인 장윤석과 이한성을 제치고 자유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주시-문경시-예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새누리당 법률자문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세비반납 공약 파기 논란

지난 2016년 4월13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현 최교일 의원등 당시 새누리당 소속 후보자 40명은 국민을 상대로 조건부 세비 반납 약속을 했다. 이들은 갑을개혁, 일자리규제개혁, 청년독립, 4050자유학기제, 마더센터 등 대한민국을 위한 5대 개혁과제를 2017년 5월 31일까지 이행하지 못하면 1년치 세비를 국가에 기부 형태로 반납하겠다고 공언하였으며 계약서를 작성하고“우리는 ‘대한민국과의 계약’에 서약합니다”라며 “서명일로부터 1년 후인 2017년 5월31일에도 5대 개혁과제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서 1년치 세비를 국가에 기부 형태로 반납할 것임을 엄숙히 서약합니다”라고 썼다. 거기다가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고 이 광고를 1년간 보관해달라고 하였다. 이 약속에 이름을 올린 당시 후보는 40명이다. 이들 중 당선자는 27명(강석호, 강효상, 김광림, 김명연, 김무성, 김성태, 김순례, 김정재, 김종석, 박명재, 백승주, 오신환, 원유철, 유의동, 이만희, 이완영, 이우현, 이종명, 이철우, 장석춘, 정유섭, 조훈현, 지상욱, 최경환, 최교일, 홍철호)에 달한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5대과제의 이행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 공약 후 1년이 다되어 세비반납 공약이 논란이 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년간 5대 개혁과제 법안을 발의함으로써 계약 내용을 이행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중 노동개혁을 위한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은 마감 시한인 31일 전날 오전 발의됐되었으며 이들이 앞서 발의한 5개 법안은 이행이 된것이 하나도 없이 모두 해당 상임위에 계류 중인 상태다. 이를 두고 '법안 통과가 되지 않았는데 개혁 과제를 이행했다고 볼 수 있는가', 또 '세비 반납을 피하기 위해 졸속 발의한 것 아닌가' 등의 비판이 일고 있으며 약속했던 세비 반납의 조건이 '과제 이행' 여부였다는 점에서 법안 발의만으로는 약속을 이행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검찰로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무리하게 기소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부당 징수돼 돌려받아야 할 세금을 국가기관끼리 시간과 세금 낭비하여 재판 하느니 일부만 환급받고 국고로 들어가게 놔두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 사건은 모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2016년 12월 6일 재벌 총수 및 전경련 관계자 등을 상대로 실시한 최순실 청문회에서 갑자기 재벌 총수들에게 뜬금없이 저출산 문제를 제기하여 눈총을 받았다.


이후 같은 당 의원인 이완영, 이만희와 함께 청문회 증인인 정동춘 K스포츠 이사장을 만나 위증 교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자, 12월 22일 5차 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해외 출장 사유로 국조 청문위원직에서 사퇴했다.


7차 청문회에 다시 청문회 위원으로 돌아와서도 그닥 달라진 건 없었다. 심야 질의 때 진실을 파헤치는 질문을 하기는커녕,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에게 "내가 이완영과 함께 있던 사무실에서 당신을 보고 나서, 당신이 나를 친박으로 분류해서 만든 문서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는지 아느냐"며 하소연만 하다가 질의 시간을 다 날렸다.


2017년 7월 26일 방송된 추적 60분에서 이명박 대통령 사저 부지 매입 의혹 당시 중앙지검장으로서 사건을 봐주기한 정황과 김무성 대표 사위 마약 사건 변호인을 맡은 사실이 다시 한번 논란이 되며 한때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링크되기도 했다.



2018년 1월 29일에는 8년전 안태근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검사의 피해 사실을 인사권자인 법무부 검찰국장으로써 은폐했다고 폭로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 사건 당시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셔”라고 호통 친 검사장은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맞다고 확인했다.


30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임 검사는 "당시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시냐'고 호통을 친 검사장급 인사는 최 의원이 맞다"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9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JTBC '뉴스룸' 에 출연해 2010년 장례식장에서 당시 법무부 간부였던 안태근 전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이후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에 임 검사는 방송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안 전 검사의 성추행 사건 관련, 피해자를 확인한 뒤 감찰 협조를 설득하는 도중 '검사장급 인사'에게 호출됐다”라며 “(검사장급 인사가) 저의 어깨를 갑자기 두들기며 '내가 자네를 이렇게 하면 그게 추행인가? 격려지?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셔' 그리 호통을 치셨다”라고 폭로했다. 


이어 “제게 탐문을 부탁한 감찰 쪽 선배에게 바로 가서 상황을 말씀드렸다”라며 “결국 감찰이 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임 검사는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최교일 의원은 법무부 검찰국장(2009년 8월~2011년 8월)에 재임 중이었다. 


최교일 역대 선거 결과

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2016

총선

20대

국회의원

경북 영주시·문경시·예천군

새누리당

70,131 표

57.15%

1위

당선

초선


최교일 의원, "박 대통령 탄핵 절차 문제 많아"



[국회방송] 국회의원 25시-최교일 의원편 (201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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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여상규 프로필


여상규 국회의원
출생 : 1948년 9월 15일, 경남 하동군
종교 : 불교
소속 : 자유한국당
지역구 :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
의원 선수 : 3선 의원
의원 대수 : 18·19·20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법학과 졸업
수상 : 국민훈장 목련장  외 1건
경력 : 2016.5.30 제20대 국회의원  외 35건


여상규 사이트

여상규 블로그 : http://blog.naver.com/bluesky435

여상규 트위터 : https://twitter.com/sky435

여상규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sky435


여상규 학력

1962년 악양초등학교 졸업

1965년 악양중학교 졸업

1968년 경남고등학교 졸업

1977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수석 졸업


여상규 경력

서울고등법원 판사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장

법제사법위원회


1948년,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서 태어났다. 악양초등학교, 악양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사법연수원 10기) 판사로 근무하다가 1993년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판사로 근무하던 당시, 훗날 재심으로 무죄로 판결되는 간첩조작 사건을 맡은 것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 1109회(2018년 01월 27일)방송에 등장하였다. 자신은 간첩조작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는 주장을 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희태 대신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 하동군-남해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친이계에 속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사천시-하동군-남해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진보당 강기갑 후보, 친여 무소속 이방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15년 12월 새누리당 윤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5월에 교통사고로 운전 중이던 지역구 사천지역 사무장이 사망하고 본인은 생명이 위독할정도로 중상을 입었지만 2017년 3월 현재 회복된 상태이다.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2017년 5월 2일 다른 비유승민계 의원들과 함께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바른정당 탈당계를 제출하고 자유한국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다. #5월 6일 홍준표 대통령후보가 당무우선권을 근거로 복당을 지시한 것을 두고 당내 작은 내홍을 겪다가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이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하였다. 5월 12일 마침내 동반 탈당한 11명의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복당 절차가 완료되었다.



"교육용 위장전입은 처벌하면 안돼" 발언

2011년 8월 4일 여상규 한나라당 의원은 "우선 관행적인 자녀학업을 위한 관행적인 주민등록법 위반, 소위 위장전입이라고 하는 이 부분에 관해 지금까지 그런 사건을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처벌한 사례가 없고, 오히려 국민의 법 감정상 그런 것을 처벌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라며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를 감쌌다. 그는 또 한 후보자가 권재진 법무장관 후보자와 비슷한 시기에 '제주 오피스텔'을 구입해 의혹을 사는 데 대해서도 "오피스텔 구입은 같은 직장인끼리 사거나 가까운 친구끼리 사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라며 "그것을 두고 신조어까지 써며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감쌌다.


증여세 탈루 의혹

20억원에 이르는 임야를 아들에게 증여하는 과정에서 세금 탈루를 위해 편법으로 명의신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상규 의원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증동리 2번지 임야 3954m2를 재산신고하였는데 이 땅은 애초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방아무개씨의 소유였다가 2003년 9월 ‘매매’에 의해 지역 토박이인 박아무개씨의 명의로 이전된다. 그러나 이 땅의 실제 소유주는 여 의원의 아들인 여아무개(31)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씨가 방씨에게 이 땅을 포함한 6개 필지를 매입한 당일에 아들 여씨가 이 땅을 담보로 박씨에게 2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지역 부동산업자 등을 서류상의 땅임자로 신고한 뒤, 근저당을 설정하는 것은 1995년 시행된 부동산 실명제를 피해가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편법이다. 땅을 매입할 당시 아들 여씨는 스물한살이었기 때문에 이 재산은 사실상 부친인 여 후보자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으로 추정된다. 여씨는 2003년 증여세 등 세금을 납부한 실적이 없다.


바른정당 집단 탈당 사태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입당했으나, '보수단일화를 통해 정권창출을 하기 위해' 2017년 5월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간첩조작 사건 판결

2018년 1월 27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1980년대 간첩조작 사건의 1심 재판의 판사였음이 밝혀졌다. 고문을 당했던 당사자는 치매 초기 증상을 겪고 있지만 고문을 당했던 기억만큼은 생생히 기억하여 제작진에게 진술하였고, 이에 제작진이 여상규 의원 집무실에 방문하였다. 하지만 여상규 의원은 부재중이었고, 전화를 한 끝에 정말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다음은 여상규 의원과의 일문일답(논란이 되었던 부분)


제작진: 47일 동안 불법 구금을 당했고, 고문도 당했는데...

여 의원: 지금 그런 걸 물어서 뭐 합니까?

제작진: 의원님. 당시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거든요.

여 의원: (열받은 투로)뭐요?

제작진: 그거에 대해서는 책임을 못 느끼시나요? 의원님께서 어쨌든 1심에서 무기징역을…

여 의원: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 정말.(전화 끊기는 소리)

 28일 새벽부터 국내 주요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여상규' '여상규 의원'이 오르내렸다. 비판 여론은 급등했고, 그의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에는 힐난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여 의원을 포함, 과거 고문조작 사건에 연루된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들이 게재됐다.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118988


여상규 역대 선거 결과

연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2008

총선

18대

국회의원

경남 남해군·하동군

한나라당

34,874 표

56.73%

1위

당선

초선

2012

총선

19대

국회의원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

새누리당

57,840 표

50.30%

1위

당선

재선

2016

총선

20대

국회의원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

새누리당

59,717 표

54.83%

1위

당선

3선



여상규..박근혜 대통령 구속연장 법상 불가능..영장 재발부 위법.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하면 뭐하나요?? 인간이 되어야지 여상규 의원이 처벌 받아야 한다면 ♡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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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 양정철 프로필


양정철 대학교수, 전 공무원
출생 : 1964년 7월 4일, 서울
소속 : 우석대학교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 학사
수상 : 2007 홍조근정훈장
경력 :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외 6건


양정철 사이트

양정철 트위터 : https://twitter.com/yangjungchul


양정철 경력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회장

언론노보 기자

스카이라이프 이사대우

대통령직인수위 당선인비서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사무처장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교내 신문인 외대학보 편집장을 맡았다. 졸업 이후에 기자로 활동하다가 참여정부 시절 언론 정책을 담당했고, ‘기자실 통폐합’을 주도했다. 또한 문 전 대표의 자서전 격 저서인 <운명>의 집필을 도왔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선 문재인 캠프의 메시지팀장을 맡았다. 관계자들은 “양 전 비서관은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강한 스타일이다. 2선에 물러나서도 문 전 대표를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3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표창원, 진중권과 함께 팟캐스트를 잠시 진행했다. 이른바 범야권 공영방송 시민표창, 양비진쌤,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에 맞서 야권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양정철은 양비를 담당했다. 양정철 비서관의 줄임말이다. 넷 중에 존재감은 가장 적은 편이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그땐 국민의당의 분당으로 야권이 분열하며 새누리가 180석이니 200석이니 떠들어대던 시절이다. 따라서 한 석 한 석이 소중한 때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연대는 정치공학적으로 당연한 주장이었다. 아무쪼록 이 방송은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한 뒤 더불어민주당이 진보 정당과의 당 대 당 연대 노선을 버리는 대신 완강한 독자노선으로 길을 선택하면서 막을 내렸고, 양정철은 다시 존재를 감췄다.


현역 국회의원이자 추미애 지도부의 최고위원으로 입성한 전해철 의원과는 달리, 정치 일선에 전면 나서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문재인 전 대표를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그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전 대표가 2016년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을 때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문 전 대표의 대담집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기획한 것도 양정철 교수라고 한다. 다만 여전히 비선 라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문재인 캠프에서 후보 비서실 부실장이라는 엄연한 직함을 달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2017년 5월 16일, 모든 공직을 고사하고 물러났다.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하며 긴 항해를 마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갈 것이며,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친문패권주의, 3철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측근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시선을 피하기 위한 행보인듯 하다. 향후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휴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10년동안 거의 무직으로 현재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분(문재인 대통령)과의 눈물 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저는 퇴장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지난 19대 대선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해 온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6일 이 같은 메시지를 남기고 정치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양 전 비서관은 대선 준비 단계에서부터 "정권교체에 성공하면 어떤 자리도 맡지 않고 물러나 있겠다"는 뜻을 주변에 알려 왔고, 문 대통령은 15일 만찬에서 이 같은 그의 굳은 뜻을 재확인하고 눈물로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비서관은 정부 공직을 맡지 않더라도 국내에 머물 경우 행여 제기될 수 있는 '비선 실세' 논란에 쐐기를 박기 위해 조만간 뉴질랜드로 출국해 장기간 외국에 체류할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비서관의 거취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던 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관저로 양 전 비서관을 불러 만찬을 함께 했다.

양 전 비서관은 만찬에서 새 정부 국정 운영에 한치의 부담을 주지 않고, 널리 인재를 발탁해 외연을 확장할 수 있도록 세인으로부터 잊혀 지내겠다며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양 전 비서관은  1시간 40분 동안 가진 문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이러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양 전 비서관의 강한 '2선 후퇴' 의지를 거듭 확인하고 그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양 전 비서관의 간곡한 요청을 수락하면서 눈물까지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비서관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문 대통령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 있었다.

양 전 비서관의 충정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양 전 비서관의 뜻을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떠나야 하는 측근에 대한 안쓰러운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비서관은 2011년 문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을 기획하고 집필을 도맡은 이후 전국 순회 '북 콘서트'의 흥행을 이끌며 문 대통령의 정치 입문을 이끌었다.

이번 대선 출마를 앞두고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이 네팔 등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을 때에도 양 전 비서관이 동행했을 정도다.

양 전 비서관의 퇴장에 대해 친문계 인사들은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충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양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기자실 폐쇄를 주도하며 언론 및 야당과 격하게 대립했던 인물이다.

더욱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친문 패권주의 논란이 불거졌던 만큼 자신이 정부나 청와대에 자리를 잡을 경우 문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지인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 괴로운 공격이었다"며 억울함을 표하고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친노 프레임이니 3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친문계 핵심으로 백의종군을 솔선수범함으로써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을 향해 정권 출범기의 '자리 다툼'에 무언의 경고음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양 전 비서관은 이날 지인들에게 보낸 장문의 문자 메시지에서 "그분(문 대통령)과의 눈물 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저는 퇴장한다”고 밝혔다.

그는 "머나먼 항해는 끝났다.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한다"며 "그분이 정권교체를 이뤄준 것으로 제 꿈은 달성된 것이기에 이제 여한이 없다"고 적었다.

이어 "멀리서 그분을 응원하는 여러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조용히 지낼 것이다"며 "잊힐 권리를 허락해 달라"고 덧붙였다.


전해철 의원,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이른바 3철이라고 불렸던 문재인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다.

양정철 전 비서관, 전해철 의원, 이호철 전 수석.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정규 첫방송, 양정철 전 비서관 인터뷰 공개


18일 방송되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독점 인터뷰를 공개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3철' 중 한 명인 양정철 전 비서관은 문대통령 당선 직후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달라"라며 문자메시지 한통을 남기고 외국으로 홀연히 떠났다가 8개월 만인 지난 17일 새벽 일시 귀국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제작진은 "방송 전날인 어제 아침 양정철 전 비서관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김어준 씨와 독대했다"며 "'독한 대담'은 대본도 연출도 없이 오로지 김어준 씨에 의해 진행되는데다가 첫 게스트인 만큼 까다롭고 신중하게 인물을 선정했다"고 섭외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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