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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오신환 국회의원 프로필


오신환 국회의원
출생 : 1971년 2월 7일,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신체 : 키 172cm, 혈액형 O형
가족관계 : 배우자 유정미, 슬하 2남
종교 : 개신교
병역 : 육군 병장 만기전역
소속 :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지역구 :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의원 선수 : 2
의원 대수 : 19, 20
소속 위원회 :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학력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아태지역 연구학과 석사과정 수료  외 4건
수상 : 2018 제6회 대한민국 입법대상  외 9건
경력 : 2019.5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외 28건




오신환 학력

1983년 서울당곡초등학교 졸업

1986년 당곡중학교 졸업

1989년 당곡고등학교 졸업

19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 학사

2007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정치행정학 석사 과정 수료


서울 당곡초등학교 - 당곡중학교 - 당곡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건국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고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후 연극원을 졸업했다. 이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책대학원 석사를 수료했고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도시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1994년 연우무대 소속 연극 배우로 대학로에 데뷔해서 키스 등의 작품에서 연기를 했다. 연우무대는 대한민국 명문 연극극단 중 하나로 오신환은 연우무대에서 송강호와 함께 막내 생활걸레질을 했다고 한다.


2006년 배우 생활을 은퇴하고 정치인으로 뛰어들었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서울특별시의회 시의원 선거에 뛰어들어서 당선되어 활동하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관악구 구청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유종필 후보한테 밀려 낙선했다. 그 이후로는 국회의원 선거로 방향을 틀어서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를 통해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관악을 선거구 최초로 새누리당 출신 국회의원이 배출된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도 처음이다.


국회마다 배우 출신 정치인들이 있었는데, 20대 국회에서는 유일한 배우 출신 국회의원이다. 계파 상으로는 비박계 쇄신파에 속한다. 한때는 김무성과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탄핵정국부터 유승민계로 분류되고 있다.


4.13 총선 직후 새누리당 혁신모임에 참여했으며 총선패배의 책임이 있는 원유철 전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직에 대해 반대성명을 내고 겸직 반대를 관철시켰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에서 중도개혁노선을 띠고,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의원들의 초당적인 입법 연구모임인 '아젠다 2050'에 참여하였다.


2016년도 제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관악구을 지역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4만5454표를 얻어 37.05퍼센트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제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로 임명되었고, 사법시험 존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법제사법위원회를 자원하였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 4당이 공직선거법 개정·공수처 신설 등의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고 4월 23일 바른미래당에서 이를 찬성 12, 반대 11로 가결하자 사개특위 간사로서 반대할 것을 선언했다. 사개특위의 4당 의원은 총 11명으로 이들 중 한 명만 반대해도 패스트트랙은 무산된다. 바른미래당 지도부에서 사개위 간사를 자신에서 채이배로 교체하려 하자 이에 반대했고 바른정당계 의원들과 자유한국당도 오신환 사보임에 반대했으나,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4월 25일 사보임 신청서를 제출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를 허가했다.


김관영 원내대표가 기호 3번 출마 결의안 이후 사의를 표명하자, 실시된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 김성식을 따돌리고 바른미래당의 제3대 원내대표가 되었다.



오신환 논란거리


조사받는 지인 면회하려 한밤에 경찰서 방문

현행범으로 체포된 지인의 면회차 심야에 경찰서를 방문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오신환 의원측은 '잠시 면회를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였고 경찰 또한 '압력이나 청탁을 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논문 표절로 석사 학위 취소

2015년 4.29 재보선 당시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던 고려대 정책대학원 석사 학위가 취소되었다. 고려대학교 관계자는 오 후보의 논문에 표절 의혹이 제기돼 심사를 벌인 결과 인용을 한 뒤 출처를 누락한 부분 등이 확인돼 논문을 취소시켰다고 말했다. 이에 오신환 의원 측은 '스스로 논문을 철회하고 학위를 자진반납한 것'이라 해명하였다.[18]


세비반납 공약 파기

오신환의원 외 바른정당의원 5명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계약서 형식의 신문광고를 내면서 ▲대한민국 모두를 위한 갑을개혁 ▲상속자의 나라에서 혁신가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일자리규제개혁 ▲청년의 주거독립과 재정독립을 위한 청년독립 ▲40대, 50대의 새로운 인생 도전을 돕는 4050자유학기제 ▲'임신에서 입학까지'엄마의 일과 자립을 도와주는 마더센터 등 ‘대한민국과의 계약’이라는 개혁과제를 제안하며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1년치 국회의원 세비를 국가에 기부하는 형태로 반납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개혁과제는 지켜지지 않았고 이를 지키지 못한것에 대하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20대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한 데다 탄핵과 분당 사태까지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데 대해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 드린다”고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그러나 공약을 못 지키면 세비를 토해내겠다는 약속은 결국 어겼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각 의원이 자신의 환경에 맞는 방법으로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만 말하고 세비반납에 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신환 선거 결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지방 선거

7대

시의원

서울 관악구 제1선거구

한나라당

21,656 표

53.80%

1위

당선

초선, 민선 4기

지방 선거

23대

구청장

서울 관악구

한나라당

82,899 표

35.29%

2위

낙선

민선 5기

총선

19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새누리당

37,559 표

33.28%

2위

낙선

 

4·29 재보선

19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새누리당

33,913 표

43.89%

1위

당선

초선

총선

20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새누리당

45,454 표

37.05%

1위

당선

재선


[생중계] 김성식 vs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경선



NATV 국회방송 300인의 희망인터뷰(새누리당 오신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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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강기정 프로필


강기정 정무직공무원, 전 국회의원
출생 : 1964년 12월 3일, 전남 고흥군
소속 :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종교 : 천주교(세례명 : 돈 보스코)
의원 선수 : 3
의원 대수 : 17·18·19
정당 :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 17·18·19(광주 북구 갑)
학력 : 전남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외 3건
수상 : 2015 제3회 대한민국우수국회의원 대상  외 3건
경력 : 2019.1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외 20건


강기정 사이트

강기정 공식사이트 : http://kanggijung.com/

강기정 플러스친구 : http://pf.kakao.com/_xnfxbjxl

강기정 블로그 : http://blog.naver.com/okang1203/

강기정 트위터 : https://twitter.com/gijungkang

강기정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okang21


강기정 학력

금산중앙초등학교

금산중학교

대동고등학교

전남대학교 전기공학과



강기정 주요 경력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 제17대 국회의원 (광주광역시 북구 갑)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열린우리당 부대표

국민연금제도개선특위 위원

열린정책연구원 이사

제17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제17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 제18대 국회의원 (광주광역시 북구 갑)

2008년 8월 : 제18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2008년 8월 : 제18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

제18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위원

제18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 제19대 국회의원 (광주광역시 북구 갑)

2012년 6월 ~ 2012년 11월 :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2012년 7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2015년 2월 ~ 2015년 7월 :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

2015년 8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2019년 1월 ~ 현재 :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강기정은 전라남도 고흥 섬마을에서 아버지 강부흥과 어머니 진소방 사이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흥 금산중앙초등학교와 금산중학교를 마치고 광주 대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대동고등학교 졸업 후, 전남대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1982년 박관현의 사망일을 맞아 처음 경찰서에 연행된 이후 학생운동계에 투신하게 된다. 전남대 재학 중 1985년 삼민투 위원장 을 지냈다.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에 참가했다. 1985년 삼민투위원장으로 8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감옥생활을 하였다.


1982년 전남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여 '사회조사연구회'에서 활동하였다.


1999년 아파트 공동체 연구센터를 조직하였다. 그 뒤 16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 뒤 희망자활후견기관 관장에 선임되었다.


1985년 전남대학교 삼민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5월의 빛’이라는 안내 봉사단을 창단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광주광역시 북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박광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박광태가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여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역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김상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의원인 새천년민주당 김상현 후보에 설욕하였다. 이후 열린우리당 복지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7년 말 BBK 특검법 때문에 벌어진 국회 공성전 때 의장석을 점거한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전화기를 무기로 삼아 대치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한화갑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정세균 대표최고위원의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2008년 말 행정안전위에서 당시 법안소위원장이었던 권경석 의원의 개회 선언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권 의원의 입을 막고 웃으면서 히스기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2]2009년 7월에는 미디어법 통과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의 보좌관을 때려, 이 2건으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0년 말에는 4대강 예산안 날치기 시도때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과 쌍방 폭력을 행사했다. 육군사관학교 시절 럭비부 주장이었던 김 의원에게 선빵을 날렸는데, 일방적으로 당하고 난 이후 엉뚱하게 자신의 곁에 있던 국회 경위의 얼굴을 무차별 폭행하여, 폭행죄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으며, 해당 행위로 인한 갑질 논란으로 여론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6월부터 12월까지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시정연설 후 대통령경호실 차량의 통행방해 및 버스 운전 담당 순경을 뒷통수로 들이받아 논란이 되었는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2015년 2월부터 7월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강기정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북구 갑 선거구와 광주 서구 을 선거구를 전략공천을 추진할 것으로 보였는데, 컷오프 대상은 아니나 개인 지지도가 너무 낮은 것이 원인인 듯하다. 또한 강기정의 폭력이미지가 워낙에 강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그래서 사실상 공천 탈락이 예상되었는데 결국 컷오프되면서 낙천을 당하고 말아 20대 총선에서는 의원직을 유지하지 못했다.


컷오프를 통보받은 직후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신경민 의원에 이어서 9번째로 연설을 하게 되었다. 과거 몸싸움 국회의 중심이 되었던 자신의 모습과 몸싸움이 사라진 현재의 국회를 비교하며 연단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긍정적으로 평하는 이들 사이에선, 발언 도중에 간간히 한숨으로 한숨 요정과 목사님과 같은 설교투로 인해, 천주교 신자임에도 홀리버스터 중인 강 목사님이라고 통칭되고 있다. 




2019년 1월 8일, 신임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전임 한병도 수석과 마찬가지로 강 신임 수석도 호남 출신이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친문 색채가 짙어졌다", "친위체제 구축"이라며 일제히 비판적인 논평을 냈으며, 특히 자유한국당은 강 수석이 과거 저질렀던 각종 폭력 행위들에 대해 비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혼자 '국민과의 소통강화 의지', '국정쇄신 의지 표명'이라고 평가했다.



강기정 전과

현존자동차방화미수, 국가보안법위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징역 7년, 자격정지 5년 - 1985년 10월 28일 선고

현존건조물방화예비, 국가보안법위반: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 1988년 1월 20일 선고,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복권

모욕, 공무집행방해, 상해, 재물손괴: 벌금 500만원 - 2010년 6월 24일 선고

공무집행방해, 상해: 벌금 100만원 - 2012년 10월 29일 선고



강기정 저서

《강기정 새천년을 위하여》

《그 도끼날로 나를 찍어라》

《강기정의 바다에서 만납시다》

《법 만드는 재미》

《강기정의 목욕탕 이야기》

《지구생각》

《강기정의 목욕탕 이야기2》


강기정 역대 선거 결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총선

16대

국회의원

광주 북구 갑

무소속

15,606 표

19.90%

2위

낙선

8·8 재보선

16대

국회의원

광주 북구 갑

무소속

6,047 표

18.10%

3위

낙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광주 북구 갑

우리당

51,258 표

59.82%

1위

초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광주 북구 갑

민주당

36,656 표

63.28%

1위

재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광주 북구 갑

민주당

37,718 표

57.71%

1위

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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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장 노영민 프로필


노영민 정무직공무원, 전 국회의원
출생 : 1957년 11월 25일, 충북 청주시
종교 : 천주교(세례명 : 바오로)
의원 선수 : 3
의원 대수 : 17대, 18대, 19대
정당 : 더불어민주당
소속 : 주중국대한민국대사관 대사
학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  외 3건
수상 : 2015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  외 4건
경력 : 2017.9 주중국대한민국대사관 대사  외 20건


노영민 학력

1964년~ 1969년 석교국민학교

1970년~ 1972년 주성중학교

1973년~ 1976년 청주고등학교

1976년~ 1990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1957년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 거부투쟁으로 기소되었다가 1979년 광복절 때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수배되어 제적되었다. 이후 노동운동에 참여하며 전기기술자로 일하였다. 1990년에야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청주환경운동연합 등에 몸담았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윤경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사무부총장, 원내대변인,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원내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충청북도당 위원장, 대한민국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시집을 피감 기관에 판매하였고 자신의 사무실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했다는 이유로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이에 본인이 책임을 지고 2015년 12월 2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2016년 1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에서 당원 자격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으면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되었는데 노영민 의원은 당의 결정에 승복하고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활동하는 지역구였던 청주시 흥덕구에는 저명한 시인인 도종환 의원이 출마하게 됐고, 노영민 전 의원은 도종환 후보의 지원 유세를 다니면서 그의 당선에 일조했다. 2012년 18대 대선 때에는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일했었는데 야인이 된 뒤로는 뉴스에 나오는 일 없이 조용히 문재인 전 대표를 수행하면서 문재인 캠프의 조직본부장직을 맡아 대선 조직들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다.


2017년 8월 30일, 중앙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대사에 내정되었다고 단독 보도하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대사 인사는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보도하면 안된다"며 유감을 표했다.


30일 오후, 주중화인민공화국대사관 특명전권대사로의 공식 내정을 발표했다. 청와대 측은 내정 이유로 "풍부한 정치적 경험과 정무적 감각, 탁월한 협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새 정부의 외교 정책과 국제관계의 방향에 대하여 높은 이해도와 실행 능력을 갖춘 적임자"라며, "한반도 사드 배치와 경제 제재 등 복잡한 대(對)중국 외교 현안을 원만히 해결하고, 수교 25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를 보다 공고히 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7년 9월 대사직 수행을 위해 탈당계를 제출했다.



2017년 10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신임장을 수여받았다. 청와대는 이날 수여식에 이어진 비공개 환담에서 “처음 중국에 부임하였을 때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그간 강행군을 하며 많은 정부 및 학계 인사들을 만났는데 입장이 바뀐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한·중 관계 발전에 화룡점정을 찍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국 정부 인사가 중국의 고사성어를 인용하여 ‘이목지신(移木之信)(나라(위정자)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중국 진나라 재상 ‘상앙’ 인용)’고 한데 대해, ‘제구포신(除舊布新)(옛 것은 덮고 새로운 것을 깔자(베풀자)/‘춘추좌씨전’ 인용)’고 대답하며, 한·중 양국이 함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고 하였다.”고 하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부임 초반에는 잡음도 제법 있었지만, 10월 말 우리나라와 중국이 사드 갈등에서 벗어나 교류 회복에 합의하면서, 그 과정에서의 역할이 뒤늦게 조명받게 되었다. 주로 중국 내 고위층들과의 소통, 신뢰 구축에 주력했다는 후문. 그리고 단기간 만에 4강 대사로서의 존재감을 얻은 것은 덤.


2017년 12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 때 방명록에다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는 말을 썼는데 보수 진영은 '만절필동'이란 말을 두고 '천자에 충성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며 노영민 대사를 맹렬히 비판했다.


노영민 역대 선거 결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총선

16대

국회의원

충북 청주시 흥덕구

새천년

24,966 표

25.75%

3위

낙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충북 청주시 흥덕구 을

우리당

36,604 표

52.45%

1위

초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충북 청주시 흥덕구 을

민주당

22,175 표

37.46%

1위

재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충북 청주시 흥덕구 을

민주당

41,606 표

52.96%

1위

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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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임종석 프로필


임종석 정무직공무원, 전 국회의원
출생 : 1966년 4월 24일, 전남 장흥군
소속 :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학력 : 한양대학교 무기재료공학 학사  외 1건

의원 선수 : 2선 

지역구 : 서울 성동구

수상 : 2007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 선정 우수의원  외 9건
경력 : 2017.5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외 16건
종교 : 천주교(세례명 :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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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경력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

대통합민주신당 원내수석부대표

통합민주당 서울성동구 을 당협위원장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제6대 대통령비서실장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



1966년 4월 24일생으로 전라남도 장흥군이 고향이다. 이후 상경하여 서울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 1학년 때, 노래패에 가담하면서부터 학생운동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88년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되어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으면서 학생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그가 주도한 것이 바로 임수경의 방북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으면서 도피하다가 결국 1989년 말 체포, 3년 반 정도 실형을 살았다. 당시 임종석은 1년 가까이 도피 생활을 했고, 전국에 10만 장의 수배 사진이 붙었다.

1993년 5월 원주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8월에 한양대 4학년에 복학하였고, 1995년 8월 대입 10년 만에 졸업했다. 의외의 수상인데, 졸업식에서 총동문회장상과 공로상도 받았다.


1994년 말부터 청년정보문화센터 부소장직을 맡아 시민운동 쪽에서 활동하였는데 가까운 동료들과 만든 청년활동단체였다.


1995년 모래시계 세대 정계진출 관련 기사들이 많이 나오던 때부터 정계진출 유력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다. 그러나 1996년 총선에는 자격이 되지 않아 출마하지 못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규모 사면복권 당시 복권되면서 출마 자격을 얻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창 386 운동권 출신 영입이 활발할 때 새천년민주당에 입당, 서울 성동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4선의 이세기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다만, 임종석 자신은 의외로 전대협 의장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원은 되지 못했는데,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당선되고, 열린우리당 대변인도 했다지만, 당내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거나, 거물급 의원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정계 입문 후 임종석의 의정활동은 국보법 폐지,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 대북 교류사업 등에 주로 초점이 맞춰진다. 초선 의원 시절인 2000년 7월 임종석은 국보법 관련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발언을 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보완책으로 간첩죄에 대해 형법상 처벌을 강화하면서 대북 접촉, 통신교류에 대해선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 규제하면 된다.” 또 2004년 7월에는 의원실 주최로 ‘국보법 폐지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고, 같은 해 8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위원모임에서는 “국가보안법은 위헌적이며 반(反)민주악법의 상징이기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04년 12월에는 국보법 연내 폐지를 촉구하는 의원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임종석은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송금 특검수사에도 적극 반대했다. 대북송금 사건은 김대중 정권 때인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5억 달러를 불법송금한 사건을 말한다. 2003년 3월, 임종석 등 당시 민주당 소장파 의원이 주축이 된 모임인 ‘정치를 바꾸는 젊은 희망’은 대북송금 특검수사 반대성명을 냈다. 같은 해 6월에는 민주당·개혁당(대표 유시민) 소속 의원 61명과 함께 대북송금 특검수사 마무리를 촉구하는 성명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열풍에 밀리면서 한나라당 김동성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당내에서 활동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출범 당시 당 사무총장에 임명되면서 처음으로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문제는 이 당시 임종석이 정치자금법 문제로 재판에 걸려 있었다는 점. 결국 19대 총선 직전 나온 1심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되면서 총선 출마가 좌절되었다. 사실 출마 자체는 할 수도 있었지만, 재판 문제로 인해 공격을 받을 것 같자 결국 포기한 것. 한명숙 당시 대표가 끝까지 만류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는 사퇴를 선택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사무총장으로서 공천권과 관련하여 소위 노이사 공천(친노-이대-486 위주 공천)을 주도했다는 공세도 한몫 했다. 성동구 을 지역구는 그의 친구인 홍익표 교수에게 넘어갔고, 그는 사무총장직도 내놓게 되었다. 그의 사퇴 원인이 된 정치자금법 문제는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면서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가 났다.


2014년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해당 재단은 남측 방송을 대리하여 대한민국 내 북한 저작물 이용의 저작권료를 북한에 지불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14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이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중도전향"을 사실상 인정했다. 임종석은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노선이나 정책이 상당히 치우쳐있다"며 "과도하게 사회,정치적 문제에 집착하고, 국가 운영과 관련된 의지에는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성향에서 보이듯 종북이라고 낙인을 찍을 수도 없다.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 캠프에서 활약하면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되어 2015년까지 재직하였고, 때문에 박원순계의 대표주자 정치인으로 분류되었다.


총선 출마를 위해 정무부시장 직을 내려놓은 후, 은평구 을 출마를 선언한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의 거물인 이재오와 겨뤄서 정치적인 재기를 모색하였는데, 그만 당내 경선에서 무명의 신인이지만 은평구 내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만들었던 강병원 후보에게 패하면서 출마 자체를 하지 못했다.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많은 기대를 받으며 정치에 입문했지만, 18대 총선부터 20대 총선까지 세 번의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 10년 넘게 원외에 남게 되었다. 임종석과 함께 국회의원 자리에 도전한 다른 박원순계 정치인들도 기동민을 제외하면 경선과 본선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의 비서실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전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을 했다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문재인 당시 후보를 상대로 극단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었던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다만 유시민 작가는 썰전에서 임종석을 박원순계로 분류하는 이 같은 시선에 대해서는 꼭 그런 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면서 '편견이다'라고 비판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거의 모든 일정에(심지어 주말에도) 참가하며 매번 같은 수트에 같은 넥타이 차림인 것을 보고 네티즌들은 대체 퇴근은 하는 거냐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회의 도중 몸에 부항 자국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래서 대중에선 임플란트하게 생겼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퍼지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장면에서 유독 환하게 웃으면서 보내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고 각종 사이트에서 그렇게 좋냐며 신나게 놀려먹었다. 7월 5일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문 대통령이 독일로 떠날 때도 또 환하게 웃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번 정부 첫 국회 업무보고에서는 사과 할 일에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야당의 공격을 적절히 방어해 청와대와 야당간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않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의원 시절에도 친화력 있는 성품으로 유명했던 만큼 업무 보고 중에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충북 지역도 신경 써달라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탈권위적 행보와 소탈한 모습이 자주 비춰지기 때문에 '고통 받는 비서실장'이라는 밈 화가 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자 한때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국민의당의 박지원 의원이나 주승용 의원같이 존재감 있는 인물들이 전남도지사 선거에 나오면 고향이 전남에 있는 임종석 실장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전남도지사 차출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임 실장이 전남도지사 선거에 나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못을 박아 없던 이야기가 되었다.


2017년 11일 6일, 청와대를 대상으로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전희경 한국당 의원이 청와대가 반미, 친북적인 강령을 가졌던 주사파와 전대협에게 장악당했다고 주장하며, 소위 '종북좌파'가 차지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믿지 못하겠다는 매카시즘 논리로 청와대를 공격하자, 격앙된 목소리로 "그게 질의입니까? (국민을 대표해서 묻는데 그렇게 말하냐는 말에 대해) 국민의 대표답게 질의하지 않으니깐 그렇죠!" 라며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임 실장은 전 의원의 비판에 "전희경 의원님 말씀에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아주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5, 6공화국 때 정치 군인들이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전 의원님은 살펴보지 않았습니다.[3] 그러나 지금 의원님께서 거론하신 대부분의 그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의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습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명 초기에는 대통령 보좌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비서실장 자리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고,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왕실장'으로 군림하며 대통령 참모 그 이상의 과도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기춘대원군'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만큼 적절한 역할 수행을 해내고 있다고 평가를 받았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인수위 기간 없이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초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던 점이 고평가 받는 요인 중 하나이다. 또한,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수석보좌관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대통령 비서실의 간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확정된 뒤인 2018년 3월 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4월 27일로 예정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할 준비위원회를 꾸리라는 지시를 내렸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끔 준비위원회가 구성된다고 발표되었고, 3월 16일 첫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는 중요 사항을 결정할 전체회의를 매주 또는 격주에 한 차례 열기로 했다. 준비위 전체회의와 별개로, 실무 논의는 위원장과 총괄간사, 3명의 분과장이 참석하는 분과장 회의에서 논의하며, 이 회의는 주 3∼4회 열기로 했다.


2018년 4월 28일,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오전 남북정상회담장에 자리했다. 서 원장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카운터 파트였다면, 임 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가장 곁에서 보좌한 김여정 제1부부장의 카운터 파트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임 실장은 1달 동안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회담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동안 북측과 꾸준히 사전 의제 조율 작업을 벌여 한반도 비핵화를 뺀 나머지 의제들에 대해선 회담 전에 상당부분을 남북이 합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러한 임 실장의 역할에 주목해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전 의원의 방북을 주도하는 등 학생운동 시절부터 그가 거쳐온 인생역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최룡해와 함께 북한의 사실상 2인자로 평가 받고 있는 김여정 제1부부장과 호흡을 맞춘 것이 임 실장이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를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임종석 선거 결과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6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성동구)

16대

새천년민주당

 48.39%

68,481표

1위

당선

제17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성동구 을)

17대

열린우리당

 49.61%

36,467표

1위

당선

제18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성동구 을)

18대

통합민주당

 46.67%

26,718표

2위

낙선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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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장 김기식 프로필


김기식 시민운동가, 전 국회의원
출생 : 1966년 3월 6일, 서울
학력 :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졸업  외 3건
수상 : 2016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국회시민정치포럼 수상  외 16건
경력 : 2016.9 더불어민주당 정책특보  외 31건
정당 : 더불어민주당
의원 선수 : 1
의원 대수 : 19대 비례대표


김기식 사이트

김기식 블로그 : http://www.dreamk.kr/

김기식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dreamkisik

김기식 트위터 : https://twitter.com/pspdkks


김기식 학력

경성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졸업


김기식 경력

1994년 09월 : 참여연대 창립

1998년 1월 : 참여연대 사무국 국장

1999년 1월 : 참여연대 정책실 실장

2000년 : 총선시민연대 사무처장

2003년 : 정치개혁시민연대 운영위원장

2003년 : 국회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

2003년 11월 :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

2003년 :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공동운영위원장

2004년 : 탄핵무효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2004년 : 총선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2004년 :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2005년 :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2006년 :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2007년 ~ 2011년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2008년 :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

2009년 :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사회학과 객원연구원



2011년 2월 ~ 2011년 9월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2011년 3월 : 시민정치행동 내가꿈꾸는나라 창립준비위원회 공동준비위원장

2011년 9월 : 혁신과통합 공동대표

2011년 10월 :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 특별보좌관

2011년 11월 : 시민정치행동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

2011년 12월 : 시민통합당 지도위원

2012년 5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의원

2013년 5월 :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14년 2월 ~ 2015년 2월 : 새정치민주연합 더좋은미래 책임운영간사

2014년 9월 ~ 2015년 2월 :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회 간사

2015년 3월 :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장[5]

2015년 3월 ~ 2015년 12월 : 새정치민주연합 공천혁신추진단 위원

2015년 3월 : 새정치민주연합 제2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2015년 8월 ~ 2015년 12월 : 새정치민주연합 재벌개혁특별위원회 간사

2015년 12월 : 더불어민주당 공천혁신추진단 위원

2015년 12월 : 더불어민주당 재벌개혁특별위원회 간사

2016년 7월 : 더미래연구소 소장

2016년 9월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책특보

2017년 2월 :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

2018년 4월 ~ : 금융감독원 원장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민주통합당

7,777,123 표

36.45%

비례대표 14번

당선

초선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논란과 해명


여성 인턴과 외유, 승진 특혜관련

19대 국회의원 일때 정책비서를 놔두고 20대 여성 인턴과 함께 감사 대상기관의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귀국후 김기식은 이 여성인턴을 바로9급 비서로 채용하고, 이어 3개월 후 7급으로 승진시켰으며 20대 선거에서 낙선하자 김기식이 소장으로 있던 더미래연구소에 채용했다는 사실로 야당의 공격을 받았다.야당인 바른미래당은 4월 10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여성인턴과 외유성 출장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즉각적인 수사 착수와 국회의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했다.


김기식 위원장은 국회 내 피감기관이 비용을 부담하는 해외 출장이 잦은지 여부에 대해 "19대 국회까지는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부분들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제가 어떤 로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에 대한 확인 때문에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이 조금 느슨해졌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고 있다"며 "아무리 그 당시에 관행이 있었다 하더라도 제가 스스로 더 경계했어야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여성 인턴의 특혜성 논란과 관련해선 "들어올 때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던 분이다. 박사과정을 시작할 예정이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를 담당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의원이 임기를 마치기 1년 안에 결원이 생기면 내부에서 승진을 시킨다. 그 분만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야당이 문제를 제기하는 그 인턴 외에 다른 인턴도 정책비서로 승진을 했다”



포스코 돈으로 해외연수 논란

김기식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인 지난 2007년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1년 동안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해외연수를 다녀온 의혹이 제기 되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재벌·대기업을 비판하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대기업의 돈을 받아 미국 연수를 다녀온 것에 대해 집중 비판했다. 이 해외연수 선발 과정 역시 당시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이었던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김기식을 선발해 야당의 비판을 받았다. 시민단체와 야당은 김기식을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혐으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금융감독원은 해명자료를 내고 "당시 참여연대 사무총장이었던 김 원장은 연수와 관련해 포스코 측으로부터 지원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포스코청암재단 관계자도 "김 원장에게 해외연수를 지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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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3

  • 하모니 2018.04.10 20:38

    김기식 금감원장은 문재인대통령에게 큰절 올리고 절대 충성해라.. 닭그네가 임명한 사람이면 벌서 구속되서 감방 갔을거다.. 박원순라인인데도 챙겨주시는 문재인대통령 아량에 니도 느낀바 있을거다!!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탁현민 프로필


탁현민 공무원, 공연기획자(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출생 : 1973년
소속 : 청와대 선임행정관
학력 :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문화콘텐츠학 석사  외 1건
경력 :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외 7건


탁현민 학력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문화콘텐츠학 석사학위


탁현민 경력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1999~2002)

공익문화기획센터 문화사업팀 팀장(1999~2002)

오마이뉴스 문화사업팀 팀장(2002)

SBS아카데미 전임강사(2002)

다음기획 뮤직컨텐츠 사업본부 본부장(2002~2007)

한국공연예술원 전임강사(2005)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2016년 ~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회 위원

2017년 5월 ~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


1973년에 태어났다.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1999~2002), 공익문화기획센터 문화사업팀 팀장(1999~2002), 오마이뉴스 문화사업팀 팀장(2002), SBS아카데미 전임강사(2002), 다음기획 뮤직컨텐츠 사업본부 본부장(2002~2007) 등을 역임했다.


2013년 5월 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책 출간기념회를 가졌는데, 이때 행사장에 들어와 담배를 피우던 어떤 사람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했다. 그 사람에게 목 부위를 한 차례 맞았는데, 때린 사람은 마포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되었다.


2014년 1월 '변리바바와 600인의 고기 도적'이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변희재를 가리켜 '어떤 센 또라이 하나가 있다', '변또라이, 권력을 손에 쥔 무척 아픈 아이' 등으로 표현했다가 모욕죄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고 2016년 10월 10일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되었다. 변희재가 일종의 '공인'이라는 점이 감안된 것. 무죄로 확정된 날 "나의 연관 검색어가 '변희재'라는 것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내가 치워야 할 몫의 것을 치웠을 뿐"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탁현민은 밑에 서술한 여성비하 논란으로 공중파 메인 뉴스에 수차례 나왔고, 여러 언론, 야4당, 여성단체 및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 등의 비판을 받으면서 사퇴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연출 능력을 높게 평가받아 탁현민은 문재인 정부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여성비하 논란

2007년 저서인 '남자 마음 설명서'의 내용이 여성비하로 논란이 되었다. 이 책은 여성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있는데, '하고 싶다, 이 여자'에서는 콘돔을 싫어하는 여자, 몸을 기억하게 만드는 여자, 바나나를 먹는 여자 등이 있었다. 또한, '끌린다, 이 여자'에서는 허리를 숙였을 때 젖무덤이 보이는 여자를 포함했으며 '만나본다, 이 여자' 목차에는 '스킨십에 인색하지 않은 여자'를 꼽았다. 이 책에는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를 당하는 기분',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대중교통 막차 시간 맞추는 여자는 구질구질해 보인다', '콘돔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는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성을 왜곡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논란을 빚었다.


2017년 5월 26일 탁현민은 페이스북에 이에 대한 사과문을 올렸지만 비난은 사라지지 않았고, 도리어 6월 21일에 다른 저서에서도 같은 논란이 생기면서 비난은 거세지고 있다. 탁현민은 공저인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2007)라는 책에서는 '내 성적판타지는 임신한 선생님', '첫 성 경험, 좋아하는 애가 아니라서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었다. '친구가 "나 오늘 누구랑 했다" 그러면서 자랑을 하면, 다음 날 내가 그 여자애에게 가서 "왜 나랑은 안해주는 거냐?"고 해서 첫 경험을 했다. 그렇게 공유했던 여자'라는 내용이 있는데다가 그 시절 여중생에 미안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땐 그랬다라고 말해서 논란이 심화되었다


또다른 저서인 탁현민의 멘션s'(2012)에서 그는 남에게 오빠로 불렸을 때와 선생님으로 불렸을 때의 차이점에 대해, “‘오빠, 힘내’ 하면 힘이 불끈불끈 나고, ‘오빠, 달려’ 하면 지치지 않고 달리고, ‘오빠, 잘 자’ 하면 잠도 잘 온다. 누군가에게 오빠로 불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누가 ‘선생님, 힘내세요’ 하면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히고, ‘선생님, 달리세요’ 하면 ‘내가 왜?’ 하는 생각이 들고, ‘선생님, 주무세요’ 하면 ‘근데, 이 색휘가?’ 싶어진다”고 밝힌 게 알려져 여성관 왜곡 논란이 일어났다.


탁현민 저서

<뚜껑 열리는 라이브 콘서트 만들기>(나무와숲, 2004)

<탁현민의 재미있는 무대 밖 무대 이야기>(나무와숲, 2006)

<남자 마음 설명서>(해냄출판사, 2007)

<말할수록 자유로워진다>(해냄출판사, 2007) : 공저

<상상력에 권력을>(더난출판사, 2010)

<탁현민의 멘션's>(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2)

<공연 행사 제작 매뉴얼>(MSD 미디어, 2012)

<흔들리며 흔들거리며>(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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