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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장관 김영주의원 프로필


김영주 국회의원

출생 : 1955년 7월 27일, 서울

소속 :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지역구 : 서울 영등포구갑
학력 :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경제대학원 졸업 외 2건
수상 : 남녀고용평등증진 공로 국민포장 외 15건
경력 : 2016 더불어민주당 서울제주권역 최고위원  외 16건


김영주 관련 사이트

김영주 공식사이트 : http://www.youngjoo.kr/

김영주 블로그 : http://blog.naver.com/qufxod1004

김영주 트위터 : https://twitter.com/yjkim550727

김영주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youngjoo2012



1955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무학여자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무학여자중학교, 무학여자고등학교에서 농구선수로 활동하며 무학여고 전성기를 열었던 멤버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졸업 후 서울신탁은행 실업 농구단 선수로 활동하였다. 은퇴 이후 실업팀의 관례에 따라 서울신탁은행에서 근무하였다. 이 때 창구 업무를 하면서 여성 행원에 대한 임금, 대우, 승진 등 다양한 차별을 느끼고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에서 활동하여 상임부위원장까지 역임하였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이 창당되자 노동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시민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당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사회문화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정책 담당 원내부대표, 재정 담당 사무부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전여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6월부터 7월까지 원외 신분으로 민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를 역임하였다. 2014년부터 제19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의사를 진행중인 의장단이 체력적 한계를 호소하여 헌정사상 처음으로 2월 27일 오전 9시 6분경 상임위원장으로써 국회 의장석에 앉게 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등포구 갑 지역구에 그대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서울특별시 및 제주특별자치도 몫의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다.


2017년 7월 23일에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에 내정되었다. 국회에서 노동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역 의원이라는 점에서 수월한 청문회 통과를 노린것으로 보인다.


창원대 교수인 남편 민긍기(64)


김영주 공직 선거 결과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비례대표 41번)

새천년민주당

-

낙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비례대표 13번)

열린우리당

8,145,824 (38.3%)

당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영등포구 갑 )

통합민주당

34,163 (42.5%)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영등포구 갑 )

민주통합당

52,232 (52.9%)

당선 (1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영등포구 갑 )

더불어민주당

49,935 (45.3%)

당선 (1위)




김영주 의원]대정부질문_이완구 총리 그만 둘 생각없나?


[국회24시] 1회-영등포 갑 김영주 국회의원 편



제20대 국회 인터뷰 릴레이 칭찬 23회 김영주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상조 청문회] 김영주 메르시 팟지 + 채팅창 인기폭발, 공격하는줄 알았는데 힐이였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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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비서관 은수미전의원 프로필



여성가족비서관 은수미전의원 프로필
은수미 연구인, 전 국회의원
출생 : 1963년 12월 6일 (만 53세),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

종교 : 성공회(세례명:안젤라)

소속 : 더불어민주당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사회학과 졸업  외 2건
수상 : 2013 NGO 모니터단 선정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
경력 : 2016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여성위원회 위원장  외 27건



출생지는 전라북도 정읍이다. 은수미는 "어릴 때부터 20년 간을 신림동에서 살았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자랐지만 내 친구들 상당수는 판자촌에서 자랐다. 인상적인 사건이 두 번 있었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놀다가 친구를 장난 삼아 밀었더니 벽을 뚫고 옆집으로 나간 일이 있었다. 벽이 뚫린다는 것 자체가 놀랐고, 우리집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또 한번은 중학교 때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을 찾아 갔더니 흙집에서 세를 살고 있었다"라고 성장기를 회고했다.


1992년 초 당시 정부가 '반(反) 국가 단체'로 규정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활동으로 구속돼 6년 간 강릉교도소에서 복역했다. 1997년 출소한 후 대학으로 돌아가 2005년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유형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6월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발족하고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 관련하여 자문직을 역임하여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정책자문위원, 2011년에는 박원순시장 희망서울 정책자문, 2012년 청년유니온 자문 등 활동하였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번으로 영입,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은수미의 필리버스터


필리버스터 개막의 듀오가 된 강철나비. 이 별명은 평소 겉으로는 한없이 여려 보이고 눈물이 많지만 누구보다 심지가 굵고 강단 있다는 의미이다. 은 의원의 후원회장이자 사노맹 시절의 동지였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은수미 의원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2016년 2월 24일, 테러방지법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에 참여할 것으로 의견을 밝혀 많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그것도 이종걸 원내대표가 플랜들 중에서 밀었던 필리버스터에 대해 김광진 의원이 총대를 매고 나서겠다고 자청하자 이에 "아마 우리가 질 겁니다. 하지만, 우리부터 지는 게 낫지 어떻게 국민더러 지라고 합니까?"라고 말하며 김광진 의원에게 힘을 보태 필리버스터를 가능케 했다.


김광진 의원이 5시간여 동안 필리버스터를 하며 버텨주는 동안 충분한 자료를 모은 다음, 2월 24일 오전 2시 30분 필리버스터 세 번째 발언자로 발언을 시작했고, 오전 8시를 기해 대한민국 국회 사상 최장시간 연설 기록을 갱신했다. 종전 기록은 전날에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같은 당의 김광진 의원이 세운 5시간 34분. 이 최장 기록 이후 은수미 의원의 고문 후유증이 여러 언론에서 재조명되었다.


본회의 기준, 상임위 최장 발언은 1969년 신민당 박한상 의원의 3선 개헌 국민투표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법사위에서의 10시간 5분 연설으로 이를 또 다시 갈아치웠다. 오전 9시 26분(6시간56분 진행) 준비한 자료의 분량이 40% 남았다고 한다. 오전 11시 24분 준비한 자료의 분량이 30% 남았다고 한다. 오후 12시 48분 10시간 18분의 발언을 하고 필리버스터를 마쳤다.


그 후 12시 46분을 기준으로 故 박한상 의원의 10시간 15분의 기록을 넘기고, 12시 48분에 필리버스터를 끝냈다. 마무리발언이 특히 큰 반향을 일으킨 탓인지, 다음 날 오전까지도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 등재되어 있었다.


은수미와 필리버스터 마지막 발언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민주통합당

7,777,123 (36.5%)

당선 (3번)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성남 중원)

더불어민주당

44,546 (38.9%)

낙선 (2위)

 


은수미 전국회의원, 고문 후유증 시달려..폐렴에 장 절제 수술까지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1992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검거, 6년간 복역했다. 은수미 의원은 당시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분실에서 고문 당해 후유증으로 폐렴과 폐결핵, 종양, 후두염 등을 앓았으며 장 절제 수술도 받았다. 밀실공포증과 고소공포증에도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은수미 의원은 지난해 7월 국정원 불법 해킹 사건 관련 국정원이 ‘직원 일동’ 명의로 입장을 발표하자 페이스북에 “20여년 전 그대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사경을 헤맬 때도 원망하지 않았다”며 “나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불법적인 고문을 하지만 고민도 하고 부끄러움도 알며 기개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은수미 의원은 “나를 한달 가까이 고문하면서 한 말 기억하는가? 간첩 잡고 국제 활동하기도 바쁜데 어쩌다 국내 사람인 어린 너를 고문하는지, 더럽다. 우리도 가슴이 덜컥 할 때가 있다. 언제인 줄 아나? 길을 걷다 우연히 우리에게 고문 당한 사람을 봤을 때”라며 “나를 구문했던 3개조 21명. 서로를 별칭으로 부르던 그대들. 지금도 기억나는 별칭인 만두, 김과장. 재직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한번 대답해 보라. 이것이 당신들의 본모습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은수미 의원은 “불법 해킹 들킨 것도 부끄러울 판에 버젓이 야당 탓하는 공동성명까지 발표한다? 그것이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기관원들의 태도인가? 스파이가 공동성명 발표를 하다니 언제부터 사회단체가 되었나?”라고 비난했다.




진짜 사람하나 잘 뽑았다. 은수미 의원 끔찍한 고문 후유증을 앓으면서도,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이런다고 공천 못받아" 새누리, 필리버스터 은수미 의원에 막말


성남 중원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후보의 유세 댄스


청년위원회 청년유세단 현장에서만난 은수미 전 의원 인터뷰



은수미의원 대선 공약 꾸러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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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 프로필


김현미 정무직공무원, 국회의원
출생 : 1962년 11월 29일 (만 54세), 전북 정읍시
소속 : 국토교통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 경기 고양시정
학력 :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  외 1건
수상 : 2017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  외 1건
경력 : 2017 국토교통부 장관  외 19건


사이트

김현미 공식사이트 : http://hyunmee.net/

김현미 블로그 : http://blog.naver.com/429khm

김현미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hyunmeek

김현미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hyunmeek


1962년 전라북도 정읍군에서 태어났다. 전주여자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81학번).


졸업 이후 형광등 제조공장에 취업하여 노동운동에 투신하였으나, 이를 알게 된 가족들의 만류로 6개월만에 그만두고 대신 1987년 평화민주당 당료로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당직자로서 활동하다가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에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여타 부대변인이 정치인들의 이력서 채우기 용도였던과 달리 김현미는 상당히 부대변인으로 역량을 보여주면서 당시 한나라당이 그에 대응하는 맞수를 발굴할 필요성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부대변인 활동은 2002년 대선 종료 때까지 계속되었다,


선거는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출마를 희망했지만, 당시 그녀가 희망한 전주 완산 출마는 무산되었고, 대신 비례 44번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다. 물론 당연히 낙선.


2002년 대선 정국 때는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서 부대변인으로 맹활약했다. 노무현이 TV토론 종료 후에 "김 부대변인이 웃는 것을 보니 제가 잘 했나 봅니다."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신뢰했던 인물. 이 때문에 초대 청와대 대변인으로도 거론되었지만, 결국 국내언론1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 후 2003년 8월에는 정무2 비서관으로 보직이 바뀌는 등,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하는 2004년 초까지 청와대에서 활동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한 때 전북 지역 출마도 고려했지만 결국 비례대표로 선회하여 11번에 배치되면서 당선되었다. 선거 기간 동안에는 선대위 총선기획단 부단장 역할을 맡으면서 활동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선거구에서 출마했으나 해당 지역구에서 4선에 도전하던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에게 패배하였다.


4년간 절치부심한 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김영선 의원과 다시 만나 김영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재선 이후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당 대변인과 원내정책수석 등 당내 중책을 맡으며 중앙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져나갔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일산서구에서 일산 2동이 떨어져나간 고양 정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또다시 새누리당 김영선 후보를 따돌리고 3선에 성공하였다.


3선이 확정된 이틀 후인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20대 국회 출범 이후, 2016년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20대 1기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여성 의원이 해당 상임위의 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이다.


그리고 최초의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여성으로서 최초로 장관이 된 김현미 국토부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입니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여부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새천년민주당

6,780,625 (35.9%)

낙선 (44번)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열린우리당

8,145,824 (38.26%)

당선 (11번)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 일산서)

통합민주당

40,198 (41.84%)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 일산서)

민주통합당

63,432 (50.64%)

당선 (1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 정)

더불어민주당

66,959 (49.15%)

당선 (1위)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 김현미 "수백명이 물속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회의 한번 안하나"


김현미 "따뜻한 주거·교통 정책 펼 것"


고맙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김현미 국토부장관 임명장 수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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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 송영무 프로필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
출생 : 1949년, 충남 논산시
종교 : 로마 가톨릭
영세명 : 체사리오
학력 : 해군사관학교
수상 : 2004 보국훈장 천수장  외 3건
경력 : 2006 해군본부 참모총장  외 8건


1949년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해군사관학교 27기로 입학하여 1973년에 항해소위로 임관하였다. 


청주함장 등을 역임했다. 1997년에 해군 준장으로 진급했다.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 시험평가부장을 지냈다. 1999년 제2함대사령부 산하의 제2전투전단장으로 제1연평해전의 승전으로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해군 소장으로 진급한 뒤 제1함대 함대사령관을 지냈고 조함단장, 기획관리참모부장을 거쳐 2005년에 해군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합참 인사군수참모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을 지냈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국방개혁의 선봉장이다. 2006년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재임 당시 ‘국방개혁 2020’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계획을 수립하는데 깊숙이 관여해 육군 위주로 비대화된 우리 군의 미래 청사진을 그릴 적임자로 꼽힌다.


송 후보자는 또한 우암 송시열 선생의 13대손답게 타협을 거부하는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논란 등으로 휘청대는 군 전체에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다만 전역 후 국내 법무법인과 방산업체 고문을 지낸 경력 등이 일찌감치 거론되면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공방이 예상된다.


경력

대한민국 해군 제1함대 사령관

2006년 11월 17일 ~ 2008년 3월 20일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2013년 ~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석좌교수

2015년 ~ 더불어민주당 안보연구소 연구위원

2017년 6월 문재인정부 초대 국방부장관(내정)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직 후 인 4월5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침몰에 대해 “기뢰나 어뢰, 암초, 선체결함 등 현재 거론되는 원인이 모두 틀릴 수 있다”며 “모든 가설에는 합리적 근거도 있지만 논리적 오류도 존재 한다”고 말해 당시 진보진영의 주장과 생각을 같이 했다.

  

송 후보자는 북한의 개입설에 대해서는“ 전제도 부정도 하지 말고, 사실 확인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고 말해 보수진영의 반발을 받기도 했다.


2015년 송영무 전 해군 참모총장, 이영하 전 공군참모차장, 정표수 예비역 공군 소장, 이태연 해군 예비역 중장, 김단륜 해군 예비역 준장, 성철수 해군 에비역 대령, 송병근 예비역 대령 등이 이날 입당을 했습니다. 이들 말고도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 요청한 또 다른 군 출신 인사들까지 더하면 이날 입당원서를 제출한 이들은 20명에 이른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이들은 새정치연합이 당 브레인 역할을 하는 민주정책연구원 안에 만들기로 한 안보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국방 안보 분야의 주요 이슈에 대해 자문하고, 내년 총선을 대비해 국방 안보 분야의 정책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라고 합니다.

문재인 대표는 이들에 대한 연구위원 위촉식에서 “유능한 안보 정당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게 됐다. 아주 귀한 분들을 삼고초려 해 어렵게 모셨다”며 “이제 당이 명실상부한 든든한 안보 정당으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안보는 여야가 따로 없는 국가존립의 문제”라며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경제발전도 가능하지 않다. 안보는 평화이자 경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표는 아울러 박근혜 정부의 안보 능력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문 대표는 “목함지뢰 사건 등 총체적 안보무능이 참담하게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은 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며 “이 정부는 총체적 무능에 총체적 부패까지 더해져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 7월 13일 송영무 국방부장관 임명식



문 대통령은 송 장관에게 ▲북핵.미사일에 대한 대응력 강화 ▲자주국방력 확보 및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방산비리 근절 등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당장 현안들이 많지만 국방개혁은 우리 정부가 꼭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 중 하나고 그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장관으로) 모셨다"며 "국방개혁은 해야할 과제가 많지만 당상 시급한 과제는 북핵 미사일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두번째 과제는 자주국방력을 높이 세우는 것"이라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전지작전권 환수를 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당변한 개혁 과제"라고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하나 더 말씀 드리면 방산비리를 척결하고 근절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청와대에서도 방산비리 검증을 위한 범정부적 시스템을 갖출 생각인데 국방부에서도 자체적으로 확실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그것(방산비리 근절 성과)로 장관이 제일 먼저 평가받는다는 각오로 임해주시길 바란다"며 방산비리 척결을 재차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안보 상황이 과거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인데 오랫동안 새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 참 애가 탔다"며 야당의 지명 철회 요구로 송 신임 장관에 대한 임명을 연기해오면서 느꼈던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송 신임 장관은 "제가 부덕의 소치로 청문회와 언론에서 너무나 융단 폭격을 받은 느낌"이라며 "(국회와 언론의 비판이) 과하지 않은가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임명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러나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국방개혁이 이 시대에 꼭 해야 할 일이고 (대통령께서) 큰 임무를 주셨기 때문에 분골쇄신하는 각오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국방부를 만들어 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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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의원 프로필



김영춘 국회의원
출생 : 1962년 2월 5일 (만 55세), 부산
소속 :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 부산 부산진구갑
학력 :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 석사)  외 4건
수상 : 2015 도전 한국인상
경력 : 2016 제20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  외 19건
종교 : 천주교 (세례명 : 다니엘)


사이트

김영춘 공식사이트 : http://yckim.or.kr/

김영춘 블로그 : http://blog.naver.com/busanyc

김영춘 트위터 : https://twitter.com/busanyc

김영춘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usanyc

김영춘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user/busan0411


1961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동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학부 재학 시절인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다. 학도호국단을 없애는 대신 부활된 총학생회의 첫번째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같은 해 11월 민주정의당사 점거 시위로 구속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이후 김영삼계 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민추협을 이끌며 고생하고 있던 김영삼에게 자기 발로 찾아갔다고 한다. 김영삼이 워낙 총애해서 당시 상도동계 선배들조차 김영삼에게 하기 어려운 말이 있으면 김영춘에게 도움을 구했다. 상도동계의 명실상부한 막내라고 할 수 있다.


독수리 오형제


정치권의 '독수리 오형제'다. 제17대 총선을 앞둔 2003년 11월 지역주의 타파와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여야에서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이 모여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는데, 열린우리당 창당의 신호탄을 올린 것이 그해 7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김영춘 등 국회의원 5명의 탈당이다. 학생운동이나 노동·농민운동을 한 재야 운동권 출신의 이 5명의 탈당파를 정치권에서 부른 이름이 '독수리 오형제'다. 비록 당적을 옮기기는 했지만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대의명분과 소신에 따른 탈당이라는 점에서 '철새'가 아니라 '독수리'로 불렸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문화체육부 차관 출신의 김도현과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광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김상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김상우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후신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여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에 입당하였다. 이때부터 비노계열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2008년 에 문국현 대표의 당 운영에 반발하여 정범구 전 의원과 같이 다시 창조한국당을 탈당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하였다.


2010년 민주당에 복당하여 최고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기존의 광진 갑에 출마했으면 고생도 덜하고 충분히 편하게 당선될 수 있었을텐데, 지역주의 극복하는 새 정치 한번 해보겠다고 가족들 다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아들도 진중으로 전학시켜서 지역을 위해 낙향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일찌감치 단수공천을 받았다. 이미 2012년부터 약 4년 동안 지역을 거의 박박 기다시피 하면서 선거운동을 해왔기에 이번에는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출구조사에서는 오차범위내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왔고, 실제로는 개표이후 계속 앞서갔다. 그리고 개표 90% 시점에서 당선을 확정해 설욕에 성공하였다. 총 득표 45,706표 (49.6%). 거기에 독수리 오형제의 동지였던 김부겸도 대구에서 당선되는 결과를 얻었다. 부산시당 위원장으로서 부산심장까지 공략에 성공해 더민주의 영남권 약진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여부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신한국당

22,309 (27.9%)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한나라당

37,446 (50.8%)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열린우리당

44,519 (50.7%)

당선 (1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

민주통합당

34,238 (35.8%)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

더불어민주당

45,706 (49.6%)

당선 (1위)


국회의원25시_260회 김영춘 의원 편[2016.9.14]



부산서면 김영춘의원 지원유세(2017 0508 (D-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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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 장관 김부겸의원 프로필



김부겸(金富謙) 국회의원
출생 : 1958년 1월 21일 (만 59세), 경북
소속 : 더불어민주당
종교 : 개신교
지역구 : 대구 수성구갑
가족 : 배우자 이유미, 3녀(윤세인)
학력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외 2건
경력 : 2016 제20대 국회의원  외 11건


사이트

김부겸 공식사이트 : http://www.hopekbk.or.kr/

김부겸 블로그 : http://blog.naver.com/kimbookyum

김부겸 트위터 : https://twitter.com/hopekbk

김부겸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kimbookyum

김부겸 유투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ae7b7yN0bsReycvi_BOrZA


가족(아내, 3녀)


김부겸 자녀 중 윤세인 딸의 경우 연예인이여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생애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과거 3당 합당 등, 정계의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당적이 몇 차례 바뀔 수 밖에 없었던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TK 출신임에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점과,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 내어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정현, 정운천, 홍의락 의원과 함께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곤 한다.


독수리 오형제


정치권의 '독수리 오형제'다. 제17대 총선을 앞둔 2003년 11월 지역주의 타파와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여야에서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이 모여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는데, 열린우리당 창당의 신호탄을 올린 것이 그해 7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김영춘 등 국회의원 5명의 탈당이다. 학생운동이나 노동·농민운동을 한 재야 운동권 출신의 이 5명의 탈당파를 정치권에서 부른 이름이 '독수리 오형제'다. 비록 당적을 옮기기는 했지만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대의명분과 소신에 따른 탈당이라는 점에서 '철새'가 아니라 '독수리'로 불렸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텃밭이자 본거지인 대구광역시의 수성구 갑 지역으로 지역구를 옮기는 패기파격적인 행보를 벌였다. 지역주의를 이기지 못해 이한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40%라는 고무적인 득표율을 받았다. 그리고 2년 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시장으로 출마하였다. 19대 총선 때처럼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대구 전 지역에서 40%라는 괄목할 만한 득표율로 선전하며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였던 수성구 갑 지역구에서는 김부겸 당시 후보의 표가 새누리당 권영진 당시 후보의 표보다 더 많이 나왔다. 




정치활동

1988년 87년 12월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패배한 후 예춘호, 조순형, 장기욱 등 야당 인사와 민청학련 세대인 제정구, 유인태, 원혜영, 고영하 등과 함께 '반지역주의 개혁 정당'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을 창당. 동작 갑선거구에서 첫 출마. 총선에서 실패한 후 '민중의 당' 추진 인사들과 함께 진보적 대중 정당 건설을 위한 정치운동 단체인 '진보정치연합'을 만들고 대변인으로 활동.


1990년 민주연합추진위원호(대표 이우재) 이재오 대변인과 함께 부대변인으로 활동.


1991년 3당 합당을 거부한 민주당(이기택 총재)에 입당하면서 제도정치권에 정식으로 입문. 9월 신민주연합당(김대중 총재)과 합당한 민주당에서 부대변인을 맡음. 당시 대변인은 노무현. 홍사덕.


1992년 서울 동작 갑 선거구 공천에서 낙천. 대선을 앞둔 11월에 '이선실 간첩단 사건'연루, 국가안보법 위반 혐의로 세번째 구속.


1993년 서울지법에서 국가보안법 중 불고지죄에 해당한다는 죄목으로 징역1년, 집행유에 2년을 선고받아 2월에 석방. 당무기획실 부실장(실장 제정구)으로 복귀. 대여 공세의 아젠다를 설정하던 '정세보고서'를 매주 발간하여, 당무기획실이 '야당의 안기부'라는 별호를 얻음.


1994년 셋째 딸 현수 태어남.


1995년 민주당 4대 지방선거대책위원회 기획실장, 수석 부대변인으로 일함. 지방선거에선 대승을 거두었으나 새정치국민회의의 분당 사태 일어남.


1996년 민주당이 개혁신당과 합당. '통합민주당'으로 출범. 15대 총선 과천.의왕 선거구에 출마하여 낙선. 이후 통합민주당에 남아 있던 중 '구당(救黨)모임'의 김원기, 박석무, 제정구, 김정길, 노무현, 유인태, 원혜영, 홍기훈 등이 결성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서 조직위 부위원장을 맡음.


1997년 조순 서울시장을 후보로 내세워 대선을 준비하던 중 다시 조순-이회창의 연대로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 새로 창당한 한나라당 당적으로 변경 됨.


1998년 제정구 의원으로 선거구였던 경기도 군포시의 한나라당 지구당 조직책으로 임명, 중앙당 부대변인으로 일함.


1999년 한나라당 내 30~40대 신진 개혁 정치인 그룹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창립, 남경필과 공동대표를 맡음.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전공으로 석사학위 취득. 2000년 260표 차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한국자산관리공사 임직원의 해외 금융기관 이직과 그에 따른 이해 상충 문제를 폭로. 백봉신사상 베스트 10에 선정됨.


2001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보임됨.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 당시 한나라당의 소장개혁파들과 당론에 맞서 자유 투표(크로스보팅) 및 개정 찬성 입장을 주장. 이후 크로스보팅에 대해서는 '정치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정개모)' 소속의 이재정, 정범구, 장성민, 한나라당의 김원웅, 김영춘 등과 함께 국가보안법 등 개혁 입법과 각종 민생법안에 적용토록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음. 백봉신사상 대상 수상.


2002년 '미래연대' 단일 후보로 추대되어 정풍과 쇄신을 기치로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나 민정계가 석권한 가운데 낙선.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보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음.


2003년


이부영, 김홍신,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원희룡, 이성헌, 심재철 등 10여 명의 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국민 속으로' 결성, 한나라당 내부 개혁을 위한 활동에 돌입.

여야의 개혁 성향 의원 35명과 함께 '유엔의 동의 없는 미국의이라크전 강행에 반대'하는 성명 발표.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본회의에서 '대북송금사건 특검 법안'에 대해 재석 162명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짐. 김부'결'의원으로 불리며 당내에서 고립되기 시작.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사퇴권고결의안에 대해 개력 성향 의원6명과 함께 반대 및 결의안 철회 촉구 성명 발표.

전국의 정치개혁 관련 단체와 여야 개혁파 의원 등 1천여 명이 모인 '정치개혁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연설.

"김부겸 의원은 솔직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하면서의 망설임과 6.10항쟁 16주년을 맞는 죄스러움에 대해 얘기하고 힘과 용기를 달라고 호소했다.'김원웅 의원이 낡은 기득권을 버리고, 새 꿈을 꾸라고 했는데... 내 꿈은 조금 낡은 것 같아 이 자리에 오면서 망설임이 많았다. 정말 이자리에 꼭 나와야 겠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예전에 이런 것 하다가 그놈의 배지(국회의원)들이 저녁에 약속하고 아침에 딴 소리한 적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적어도 그런 것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나왔다는데 너무 많은 환대를 받았다.6.10항쟁 때 비디로를 봤다. 눈물을 흘렸다. 다 여기 계신 분들이 뛰시던 장면이다. 그때 우리는 왜 그렇게 헌신적이었고, 검도 없고, 용감했는지... 그 화면에 다 묻어났다. 한열이, 종철이 사진을 보면서... 내가 벌써 이 배지의 단맛에 취해서... 그래서 너무 오래 기득권에 안주했구나 해서 눈물을 흘렸다. 죄송하다.꿈꾸는 여러분들이 반드시 한국사회를 바꿀 것이다. 한 가지 부탁한다. 우리 공동체가 어렵다. 밑바닥에 내려가보면 모두 갈갈이 찟겼다. 개혁이 화두지만 자기희생과 포용을 통한 국민 통합 없이는 어디로 갈지 두렵다.여러분들의 꿈과 희생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제 비판하는 것보다 수습하고 보듬어 안고 가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렵고 힘든 길 걸어온 분들에게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러분들이 한발 앞에서 해줄 것이라고 믿고, 말석에서 따라가겠다. 일단 시작하면 뚜벅뚜벅 갈 것이다.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바란다.'상당히 오랫동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 의원은 이날 축사에서 가장 긴 박수를 받았다. '와'하는 함성도 들리지 않고, 묵묵히 긴 박수가 계속 이어졌다. 김 의원이 자리에 돌아가 참석자들에게 다시 목례를 하고서야 박수가 멈췄다."-오마이뉴스, 2003년 6월11일


7월 7일 이우재 이부영, 안영근, 김영춘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지역주의 타파 국민통합연대'를 결성. 언론에서 '독수리 5형제'로 불림.

11월 11일 민주당 탈당파 40명, 개혁당 2명의 국회의원들과 함께 총 47석으로 열린우리당을 창당.

2004년 김근태 원내대표 체제에서 홍보부대표를 맡았으나, 수석부대표의 공석으로 사실상 직을 대행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응. 17대 총선에서 재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에 보임. 신기남 당의장의 비서실장직을 맡음.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으로 선출. 2001년에 이어 두번째 백봉신사상 대상을 수상. 여론조사기관 KSOI의 정치전문가 대상설문조사에서 원희룡, 유시민과 함께 '차세대 정치인으로 가장 주목되는 인물'에 선정됨.


2005년 정세균 원내대표 체제에서 원내수석부대표직에 선임. 4대 개혁입법과제 중 '과거사법'과 '사학법'을 처리하는 데 성공. 정기국회 중 국회 기자실에서 정부 여당의 쌀 의무도입 비준안 상정 방침과 관련 "세상에 어느 정부가 자국 농민들을 절망으로 몰고, 농민들을 죽이기 위해 비준안 처리를 하려고 하겠는가?"라는 브리핑을 마친후 눈물을 흘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3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갑

한겨레

3,088 표

3.25%

5위

낙선

 

총선

15대

국회의원

경기 과천시·의왕시

통합민주당

13,780 표

18.02%

3위

낙선

 

총선

16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한나라당

46,330 표

45.54%

1위

당선

초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우리당

61,419 표

49.56%

1위

당선

재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통합민주당

49,638 표

50.82%

1위

당선

3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갑

민주통합당

46,413 표

40.42%

2위

낙선

 

지방 선거

33대

시장

대구광역시

새정치

418,891 표

40.33%

2위

낙선

민선 6기

총선

20대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갑

더민주

84,911 표

62.30%

1위

당선

4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문재인 지원 유세 대구 칠성시장



[풀영상] 김부겸 "포항이 디비졌는데, 대구는 뭐하노?"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발표 직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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