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 장관 김부겸의원 프로필



김부겸(金富謙) 국회의원
출생 : 1958년 1월 21일 (만 59세), 경북
소속 : 더불어민주당
종교 : 개신교
지역구 : 대구 수성구갑
가족 : 배우자 이유미, 3녀(윤세인)
학력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외 2건
경력 : 2016 제20대 국회의원  외 11건


사이트

김부겸 공식사이트 : http://www.hopekbk.or.kr/

김부겸 블로그 : http://blog.naver.com/kimbookyum

김부겸 트위터 : https://twitter.com/hopekbk

김부겸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kimbookyum

김부겸 유투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ae7b7yN0bsReycvi_BOrZA


가족(아내, 3녀)


김부겸 자녀 중 윤세인 딸의 경우 연예인이여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생애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과거 3당 합당 등, 정계의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당적이 몇 차례 바뀔 수 밖에 없었던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TK 출신임에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점과,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 내어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정현, 정운천, 홍의락 의원과 함께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곤 한다.


독수리 오형제


정치권의 '독수리 오형제'다. 제17대 총선을 앞둔 2003년 11월 지역주의 타파와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여야에서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이 모여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는데, 열린우리당 창당의 신호탄을 올린 것이 그해 7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김영춘 등 국회의원 5명의 탈당이다. 학생운동이나 노동·농민운동을 한 재야 운동권 출신의 이 5명의 탈당파를 정치권에서 부른 이름이 '독수리 오형제'다. 비록 당적을 옮기기는 했지만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대의명분과 소신에 따른 탈당이라는 점에서 '철새'가 아니라 '독수리'로 불렸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텃밭이자 본거지인 대구광역시의 수성구 갑 지역으로 지역구를 옮기는 패기파격적인 행보를 벌였다. 지역주의를 이기지 못해 이한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40%라는 고무적인 득표율을 받았다. 그리고 2년 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시장으로 출마하였다. 19대 총선 때처럼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대구 전 지역에서 40%라는 괄목할 만한 득표율로 선전하며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였던 수성구 갑 지역구에서는 김부겸 당시 후보의 표가 새누리당 권영진 당시 후보의 표보다 더 많이 나왔다. 




정치활동

1988년 87년 12월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패배한 후 예춘호, 조순형, 장기욱 등 야당 인사와 민청학련 세대인 제정구, 유인태, 원혜영, 고영하 등과 함께 '반지역주의 개혁 정당'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을 창당. 동작 갑선거구에서 첫 출마. 총선에서 실패한 후 '민중의 당' 추진 인사들과 함께 진보적 대중 정당 건설을 위한 정치운동 단체인 '진보정치연합'을 만들고 대변인으로 활동.


1990년 민주연합추진위원호(대표 이우재) 이재오 대변인과 함께 부대변인으로 활동.


1991년 3당 합당을 거부한 민주당(이기택 총재)에 입당하면서 제도정치권에 정식으로 입문. 9월 신민주연합당(김대중 총재)과 합당한 민주당에서 부대변인을 맡음. 당시 대변인은 노무현. 홍사덕.


1992년 서울 동작 갑 선거구 공천에서 낙천. 대선을 앞둔 11월에 '이선실 간첩단 사건'연루, 국가안보법 위반 혐의로 세번째 구속.


1993년 서울지법에서 국가보안법 중 불고지죄에 해당한다는 죄목으로 징역1년, 집행유에 2년을 선고받아 2월에 석방. 당무기획실 부실장(실장 제정구)으로 복귀. 대여 공세의 아젠다를 설정하던 '정세보고서'를 매주 발간하여, 당무기획실이 '야당의 안기부'라는 별호를 얻음.


1994년 셋째 딸 현수 태어남.


1995년 민주당 4대 지방선거대책위원회 기획실장, 수석 부대변인으로 일함. 지방선거에선 대승을 거두었으나 새정치국민회의의 분당 사태 일어남.


1996년 민주당이 개혁신당과 합당. '통합민주당'으로 출범. 15대 총선 과천.의왕 선거구에 출마하여 낙선. 이후 통합민주당에 남아 있던 중 '구당(救黨)모임'의 김원기, 박석무, 제정구, 김정길, 노무현, 유인태, 원혜영, 홍기훈 등이 결성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서 조직위 부위원장을 맡음.


1997년 조순 서울시장을 후보로 내세워 대선을 준비하던 중 다시 조순-이회창의 연대로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 새로 창당한 한나라당 당적으로 변경 됨.


1998년 제정구 의원으로 선거구였던 경기도 군포시의 한나라당 지구당 조직책으로 임명, 중앙당 부대변인으로 일함.


1999년 한나라당 내 30~40대 신진 개혁 정치인 그룹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창립, 남경필과 공동대표를 맡음.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전공으로 석사학위 취득. 2000년 260표 차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한국자산관리공사 임직원의 해외 금융기관 이직과 그에 따른 이해 상충 문제를 폭로. 백봉신사상 베스트 10에 선정됨.


2001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보임됨.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 당시 한나라당의 소장개혁파들과 당론에 맞서 자유 투표(크로스보팅) 및 개정 찬성 입장을 주장. 이후 크로스보팅에 대해서는 '정치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정개모)' 소속의 이재정, 정범구, 장성민, 한나라당의 김원웅, 김영춘 등과 함께 국가보안법 등 개혁 입법과 각종 민생법안에 적용토록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음. 백봉신사상 대상 수상.


2002년 '미래연대' 단일 후보로 추대되어 정풍과 쇄신을 기치로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나 민정계가 석권한 가운데 낙선.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보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음.


2003년


이부영, 김홍신,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원희룡, 이성헌, 심재철 등 10여 명의 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국민 속으로' 결성, 한나라당 내부 개혁을 위한 활동에 돌입.

여야의 개혁 성향 의원 35명과 함께 '유엔의 동의 없는 미국의이라크전 강행에 반대'하는 성명 발표.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본회의에서 '대북송금사건 특검 법안'에 대해 재석 162명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짐. 김부'결'의원으로 불리며 당내에서 고립되기 시작.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사퇴권고결의안에 대해 개력 성향 의원6명과 함께 반대 및 결의안 철회 촉구 성명 발표.

전국의 정치개혁 관련 단체와 여야 개혁파 의원 등 1천여 명이 모인 '정치개혁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연설.

"김부겸 의원은 솔직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하면서의 망설임과 6.10항쟁 16주년을 맞는 죄스러움에 대해 얘기하고 힘과 용기를 달라고 호소했다.'김원웅 의원이 낡은 기득권을 버리고, 새 꿈을 꾸라고 했는데... 내 꿈은 조금 낡은 것 같아 이 자리에 오면서 망설임이 많았다. 정말 이자리에 꼭 나와야 겠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예전에 이런 것 하다가 그놈의 배지(국회의원)들이 저녁에 약속하고 아침에 딴 소리한 적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적어도 그런 것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나왔다는데 너무 많은 환대를 받았다.6.10항쟁 때 비디로를 봤다. 눈물을 흘렸다. 다 여기 계신 분들이 뛰시던 장면이다. 그때 우리는 왜 그렇게 헌신적이었고, 검도 없고, 용감했는지... 그 화면에 다 묻어났다. 한열이, 종철이 사진을 보면서... 내가 벌써 이 배지의 단맛에 취해서... 그래서 너무 오래 기득권에 안주했구나 해서 눈물을 흘렸다. 죄송하다.꿈꾸는 여러분들이 반드시 한국사회를 바꿀 것이다. 한 가지 부탁한다. 우리 공동체가 어렵다. 밑바닥에 내려가보면 모두 갈갈이 찟겼다. 개혁이 화두지만 자기희생과 포용을 통한 국민 통합 없이는 어디로 갈지 두렵다.여러분들의 꿈과 희생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제 비판하는 것보다 수습하고 보듬어 안고 가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렵고 힘든 길 걸어온 분들에게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러분들이 한발 앞에서 해줄 것이라고 믿고, 말석에서 따라가겠다. 일단 시작하면 뚜벅뚜벅 갈 것이다.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바란다.'상당히 오랫동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 의원은 이날 축사에서 가장 긴 박수를 받았다. '와'하는 함성도 들리지 않고, 묵묵히 긴 박수가 계속 이어졌다. 김 의원이 자리에 돌아가 참석자들에게 다시 목례를 하고서야 박수가 멈췄다."-오마이뉴스, 2003년 6월11일


7월 7일 이우재 이부영, 안영근, 김영춘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지역주의 타파 국민통합연대'를 결성. 언론에서 '독수리 5형제'로 불림.

11월 11일 민주당 탈당파 40명, 개혁당 2명의 국회의원들과 함께 총 47석으로 열린우리당을 창당.

2004년 김근태 원내대표 체제에서 홍보부대표를 맡았으나, 수석부대표의 공석으로 사실상 직을 대행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응. 17대 총선에서 재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에 보임. 신기남 당의장의 비서실장직을 맡음.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으로 선출. 2001년에 이어 두번째 백봉신사상 대상을 수상. 여론조사기관 KSOI의 정치전문가 대상설문조사에서 원희룡, 유시민과 함께 '차세대 정치인으로 가장 주목되는 인물'에 선정됨.


2005년 정세균 원내대표 체제에서 원내수석부대표직에 선임. 4대 개혁입법과제 중 '과거사법'과 '사학법'을 처리하는 데 성공. 정기국회 중 국회 기자실에서 정부 여당의 쌀 의무도입 비준안 상정 방침과 관련 "세상에 어느 정부가 자국 농민들을 절망으로 몰고, 농민들을 죽이기 위해 비준안 처리를 하려고 하겠는가?"라는 브리핑을 마친후 눈물을 흘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3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갑

한겨레

3,088 표

3.25%

5위

낙선

 

총선

15대

국회의원

경기 과천시·의왕시

통합민주당

13,780 표

18.02%

3위

낙선

 

총선

16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한나라당

46,330 표

45.54%

1위

당선

초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우리당

61,419 표

49.56%

1위

당선

재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시

통합민주당

49,638 표

50.82%

1위

당선

3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갑

민주통합당

46,413 표

40.42%

2위

낙선

 

지방 선거

33대

시장

대구광역시

새정치

418,891 표

40.33%

2위

낙선

민선 6기

총선

20대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갑

더민주

84,911 표

62.30%

1위

당선

4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문재인 지원 유세 대구 칠성시장



[풀영상] 김부겸 "포항이 디비졌는데, 대구는 뭐하노?"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발표 직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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