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루홈런의 사나이 이범호 프로필


이범호 야구선수
출생 : 1981년 11월 25일 (만 37세)
신체 : 183cm, 96kg
소속사 : 플라이트씨티비
소속팀 : KIA 타이거즈 내야수(우투우타)
입단연도 : 2011년 02월
연봉 : 6억5천만원
학력 : 목원대학교 행정정보학과  외 3건
데뷔 : 2000년 '한화 이글스' 입단
수상 : 2011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재기상  외 6건
경력 : 2011.2 KIA 타이거즈  외 4건


이범호 학력

대구수창초등학교

경운중학교

대구고등학교

목원대학교 행정정보학과



아마추어 시절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대구수창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포지션은 유격수였고 팀 내 2루수는 박기혁이었다.[3] 이후 경운중학교를 거쳐 대구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는 경북고 야구부와 대구상고 야구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전력을 가진 팀이었다.[2] 고등학교 시절 대구고등학교의 전국 대회 성적은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고, 1997년 제 19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한 번 우승(대회 최우수 선수는 전 삼성 투수 김진웅)한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구고등학교의 성적은 2무 13패[4] 로, 프로야구 팀의 스카우트들은 낮은 전력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2000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대구·경북 지역의 최대어는 경북고 투수 배영수였다. 예상대로 배영수는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고, 대구·경북 지역의 다른 선수들은 2차 지명으로 넘겨졌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

한화 이글스 시절

2000년

200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당시 그의 스카우트를 담당한 사람은 당시 팀의 스카우트였던 정영기였는데, 그의 단단한 하체를 보고 지명을 고집했다.[5] 예상 외의 높은 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계약금은 2차 1순위 지명선수 치고는 적은 금액인 1억 1,000만원이었다.[4]


2001~2003년

2001년까지는 주로 대수비 또는 대타로 출전했고, 2002년부터 타격에 눈을 떠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김태균과 더불어 팀의 차세대 거포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4~2006년

2004년은 그에게 최고의 해였다. 유격수로 기록한 3할 타율, 23홈런은 이종범, 장종훈에 버금가는 역대급 기록이었다. 다만 유격수 수비에는 다소 허점을 보여 3루수로 포지션을 옮겼다. 그 후로 꾸준히 20홈런을 치는 타자로 성장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안정된 수비와 타격으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07~2009년

2008년 125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20안타, 19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후 연봉 협상에서 전년보다 57.1% 인상된 3억 3,000만원에 계약했다.[6] 2009년 4월 3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만루 홈런, 솔로 홈런, 3점 홈런 등 3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7]


일본 프로야구 시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09년 WBC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2009년 시즌 후 FA를 선언해 3년간 최대 5억엔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일본 리그 적응 실패와 3루수 마쓰다 노부히로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48경기에 출전해 124타수, 28안타, 4홈런, 8타점, 1도루, 2할대 타율에 그쳤다. 그 후 2군에서 44안타, 10홈런을 기록했지만 2군에 머무르다 잔류 논란 끝에 방출됐다.



한국 프로야구 복귀

KIA 타이거즈 시절

귀국 후 친정 팀 한화의 복귀 제의가 들어왔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거절했고 2011년 1월 27일 계약금 8억, 연봉 4억에 이적하였다.[8] 그의 이적으로 인해 2011년 초 한화 이글스는 맹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원성이 빗발치며 팀 몰락의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2013년 시즌 후 김상훈에 뒤를 이은 차기 주장으로 낙점돼 2014년부터 주장으로 활동했다. 2016년에 강타자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7년 시즌에 2할대 타율, 25홈런을 쳐 내며 이적 후 5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 3년 연속 25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우승에 쐐기를 박는 만루 홈런을 쳐 내며 '만루의 사나이'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2017년 KIA 우승 


이범호 선수 결혼

2010년 12월 26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동갑내기 연인 김윤미 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수상·타이틀 경력

2005년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상(3루수 부문)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상(3루수 부문), 골든 포토상

2009년 WBC 우수 선수



이범호(KIA)가 개인 통산 2000경기 출장 기록을 수립했다.


이범호는 2019년 7월 11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서 1-2로 뒤진 6회 2사 만루서 오정환 대신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범호는 삼성 선발 저스틴 헤일리와 볼카운트 1B1S에서 3구째를 때렸으나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한편 역대 KBO 리그에서 2,000경기 고지를 넘어선 선수는 2008년 히어로즈 전준호를 시작으로 2018년 LG 박용택까지 12명이며 KIA 소속 선수로는 이범호가 최초다.


2000년 한화에 입단한 이범호는 데뷔 첫해 69경기에 출장한 뒤 2004년 커리어 최초로 시즌 전 경기인 133경기에 출장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연속 전 경기에 출장한 이범호는 2003년 8월 3일 대전 SK전부터 2008년 6월 3일 무등 KIA전까지 615경기 연속 출장을 기록한 바 있다.


해당 기록은 꾸준한 활약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부상 없이 모든 경기를 소화한 기록으로 최태원(쌍방울,SK) 1,014경기, 김형석(OB) 622경기, 황재균(롯데) 618경기(달성 당시 소속팀 기준)에 이은 역대 4위의 기록이다.


이후 이범호는 2009년 4월 10일 대전 롯데전에서 1000경기, 2015년 4월 10일 시민 삼성전에서 1500경기 출장을 차례로 달성한 바 있다.


이번호 선수 은퇴

통산 만루홈런 17개 KBO 역대 최대 그래서 만루홈런의 사나이~~~


2019년 7월 13일 마지막 은퇴경기는..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 한화 이글스전 6번 3루수로 선발라인업에 출전하게 되었다. 모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25번 이범호가 새겨진 은퇴 기념 유니폼을 착용했다. 2회 5구 볼넷, 4회 초구 중견수 플라이아웃, 5회 4구 좌익수 플라이아웃으로 2타수 4사구 1을 기록하면서 20년간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팀은 10-5 패배. 공교롭게도 마지막 타석에는 3점차로 지고있는 2사 만루 상황이었지만 아쉽게도 좌익수 플라이아웃으로 물러났다. 만루 홈런은 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만루의 사나이에 걸맞는 마지막 타석이었다. 은퇴식에서는 만루홈런 퍼포먼스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의 25번 등번호와 3루수 자리는 박찬호 선수에게 물려주고 떠났습니다.



190713 KIA타이거즈 이범호 은퇴식 오마이걸 응원 영상



기아타이거즈 영원한 꽃 이범호 선수의 은퇴식 풀영상 (2001경기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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