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가대표 축구감독 박항서 프로필


박항서 축구감독
출생 : 1959년 1월 4일 (만 59세), 경남 산청군
소속팀 :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학력 : 한양대학교  외 1건
데뷔 : 1984년 '럭키 금성' 입단
수상 : 2018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외 3건
경력 : 2018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항서 학력

생초초등학교

생초중학교

경신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체육학과 (1977년 입학)



축구 선수 시절

1977년 제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으며[1] 1979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인 충무에 선발되었다. 1981년에는 1진인 화랑팀에 선발되었다.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고, 그 해 군에 입대하였고 육군 축구단 충의에서 활동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 (현 FC 서울)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1988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축구 지도자 시절

1988년 은퇴한 직후에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지내다가 19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년 2월까지 활동하였다.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하였다.


2000년 10월 허정무 감독이 사퇴한 뒤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고, 12월 한·일 정기전에는 임시 감독을 맡았다.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선임되자,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단의 융화를 일궈내는 등 2002년 FIFA 월드컵 4강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나자 2002년 8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나,[3]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아 무보수 임시 감독이라는 논란이 나왔고, 대한축구협회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고문 자격으로 벤치에 착석시키려고 하자 불만을 표출하여 엄중 경고를 받았다. 결국 9월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데 그쳐 10월 아시안 게임 폐막 후 경질되었다.


이후 2003년 포항 스틸러스에 코치로 입단하여 2004년까지 활동하였고, 그 뒤 잠시 전남 드래곤즈 기술 고문을 맡았다.


2005년 8월 새롭게 창단된 경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7년 정규 리그 4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포항 스틸러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에서 패하여 5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구단 내부 갈등으로 인하여,11월 경남 FC에서 물러났다.


2007년 12월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에 취임하여, 팀의 2008년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과 2009 시즌 6위로 챔피언십 진출 및 최종 4위를 이끌었으나 2010 시즌에는 10위에 그쳐 그 해 11월 5일 자진 사임하였다. 이후 이수철의 후임으로 2011년 상주 상무의 감독직에 올라 1부 리그로 승격했으나 1년만에 2부리그로 강등, 2013년 2부리그의 명칭 변경 후 2013년 K리그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최초 K리그 챌린지 1위에 오르며 1년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였으나 승격하자마자 K리그 클래식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2014년 K리그 클래식 12위로 1년만에 재강등되는 등 강등의 아픔을 두번이나 겪었다. 하지만 강등되자마자 2013년과 마찬가지로 2015년 K리그 챌린지 1위를 거두며 재승격하였으며, 2015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로 인해 상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창원시청 축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1년만에 현장으로 귀환하였고 프로팀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박항서의 취임은 큰 기대를 모았다. 전반기만 해도 창원시청은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리그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를 충분히 노려볼만 했으며, 6월에 개최한 내셔널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후반기가 접어들수록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력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며 순위가 급하락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 감독 박항서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인 및 U-23 감독으로 선임되어 10월에 취임했다. 한국인 지도자로는 역대 4번째로 외국 성인 대표팀을 맡는 감독이 되었다.


처음 취임했을 때 베트남 현지에선 체력이 다소 약하다는 식으로 귀띔을 해줬다지만, 정작 박항서 본인이 선수들의 체력을 테스트해 본 결과 전원이 합격할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훗날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은 체력이 약하다'라는 이 말이 베트남에 전해져 내려온 뿌리깊은 선입견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축구선수를 시작할 때부터 언론과 선배들이 '우리는 체력이 약하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 왔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아예 심리적인 한계선으로 자리잡아버린 것. 이것을 타파한 것도 박항서호의 선전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영양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했는데, 아침식사를 쌀국수로 해결하는 등 다소 불균형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협회에 개선 요청을 했고, 그 결과 삼시 세끼 모두 고기, 달걀, 우유 등의 단백질이 대거 포함된 식단으로 바뀌었다. 박항서의 부임 이후 체력면에서 더 좋아진건 덤이며, 선수들 또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게 되어 좋아했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이 진단한 베트남 선수단의 근본적인 약점은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 그래서 박항서 본인이 직접 패싱 게임에 참여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고, 그 동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던 포백을 버리고 스리백을 도입했는데 초창기엔 비판을 꽤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부임 당시엔 프로 무대에서 밀려나 실업 리그에서 감독을 하던 축구인을 데려왔다는 일부 팬들의 부정적 평가가 있었지만, U-23 대표팀을 이끌며 10년동안 못 이겼던 태국을 원정에서 격파하는 비범함을 보여주었다. 득점할 때마다 히딩크가 생각나는 화끈한 펀치 세리머니로 인기를 끈 것은 덤. 참고로 전임 응우옌 후이 탕 감독이 사임한 이유가 태국전에서 0:3으로 완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앞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2차 예선에서도 태국을 상대로 2전 전패를 기록하자 그 여파로 당시 감독이던 미우라 토시야가 경질되기도 했다. 그만큼 베트남한테 태국은 난적이었는데, 박항서는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승리를 거두면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진 것이다.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조별 리그에서 강 팀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 호주, 시리아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조 최약체로 분류되었으나, 1차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비록 1:2로 역전패하기는 했으나, 선제골을 먼저 넣고 대한민국의 페널티킥을 선방하기도 하면서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2차전 호주전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응우옌 꽝 하이의 골로 1:0으로 승리했고,[17] 마지막 3차전 시리아전은 0:0으로 비기면서 한국에 이어 조 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1월 20일, 8강전에서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 이라크를 상대로 난타전 끝에 3:3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하여 동남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때의 상황은 2002년 당시 한/일 월드컵 상황과 매우 비슷했다.


그리고 카타르와의 준결승전도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하여,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AFC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룩했다. 또한 동남아시아 최초의 결승 진출이기도 하다. 이 과정도 드라마 같은데, 전반에 39분에 페널티 킥으로 선제 실점을 허용했지만, 베트남의 에이스 응우옌 꽝 하이가 69분에 동점골을 넣었고, 이후 87분에 카타르가 문전 혼전 상황에서 추가골을 넣어 2:1로 끝나려나 싶었는데, 불과 1분 뒤에 꽝 하이가 다시 동점골을 넣으면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18] 승부차기에서는 첫 번째 키커 응우옌 꽝 하이가 실축을 했으나 골키퍼 부이 띠엔 중이 두 번째, 다섯 번째 키커를 막아내며 영웅이 되었다. 띠엔 중은 카타르가 찬 5번의 슛의 방향을 모두 제대로 읽는 활약을 보였다. 화려한 준비 동작으로 키커의 정신을 흐트린 건 덤이다.


준결승전이 끝난 시점에서 베트남 정부는 선수단 전원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박항서 감독과 골키퍼 부이 띠엔 중, 공격수 응우옌 꽝 하이는 3급 노동훈장을, 나머지 선수단에게는 1급 훈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로 베트남에서는 숫자가 클수록 격이 높다. 3급 노동훈장이 1급 훈장보다 더 큰 상이다.


우즈벡과의 결승전에서는 경기 내내 폭설이 내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 경기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지만 연장 후반 종료를 1분 남겨두고 안드레이 시도로프에게 결승골을 허용해 결국 1:2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베트남 국민들은 끝까지 잘 싸워준 선수들을 향해 끊임없는 박수를 보내며 격려했고, 선수단은 열렬한 환호 속에 카 퍼레이드를 벌이며 귀국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베트남의 영웅이자,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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