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준일 프로필
출생 : 1969년 8월 19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수유동 |
국적 : 미국 |
학력 :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전공 |
가족 : 부인, 아들 |
신체 : 178cm |
직업 : 레스토랑 웨이터, 가수,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 영어강사 |
활동 시기 : 1990~1993년(본명 활동) 2001년(V2 활동) |
소속팀 : V2 |
예명 : JIY(쟈이) |
대표곡 : 리베카, 가나다라마바사 (Pass Word), Dance with me 아가씨. Fantasy |
장르 : 뉴잭스윙, 댄스 팝 등 |
양준일은 월남전중인 1969년 8월 19일 베트남 사이공(현 호치민시티)에서 태어나 이후 부모님을 따라 홍콩과 일본에서 살다가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서울특별시 수유동에 위치한 우이초등학교에 재학중 2학년때인 1978년 2월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가족 이민을 떠난 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던 중 연예기획사 사장인 이범희씨를 만나고 가수 데뷔 제의를 받았다.
그는 20세에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한국어학당에서 공부 및 1집앨범 준비 작업 후 1991년 가수로 데뷔했으며 작사, 작곡, 무대 퍼포먼스, 편곡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춘 남성 음악가로서 호평을 받았다. 1991년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한 후 1993년까지 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당시 비자 문제 ,한국적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사실상 퇴출됐다. 그해 가수 활동을 접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1991년~1993년 한국 활동 당시, 흔하지 않은 세련된 외모 와 의상, 이국적 퍼포먼스와 강렬한 무대 매너, 개성이 강한 음악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그러나 곱상한 외모, 앞서간 패션 감각, 거침없는 무대 매너 등은 당시의 한국 가요계의 정서와 맞지 않아 호불호가 갈렸으며 일부 매니아층을 보유하기도 했다. 활동기간이 짧은 사유도 있지만 이런 사유로 당시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활동을 접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의 음악이 시대를 너무 앞서가 당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지 못했다고 평가되곤 한다.
한국을 떠난 직후 미국에서도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음악활동을 이어가고자 자택에서 합숙을 하기도 했으나 실패로 끝난다. 수년의 준비 끝에 2001년 한국 가요계에 다시 컴백한다. 그는 2001년 봄, 앨범 Fantasy를 발표하고, V2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쟈이(JIY, 양준일의 영문 이니셜,양준일이라는 이름은 사용 할수 없었다고)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타이틀곡은 당시 나름 인기를 얻었으나, 아쉽게도 소속사와의 계약관련 마찰 등 여러 문제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자연스레 가수생활을 접게 되었다.
그 후 양준일은 한국 가요계를 완전히 떠나 일산에서 영어 강사 및 영어교육프로그램 제작자로 활동했고, 2015년경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갔다. 한편, 2018년부터 온라인 상에서 그의 오래 전 영상의 매력적인 외모와 퍼포먼스를 비롯, 30여년을 앞서간 음악, 독특한 노래 가사 등이 뜨거운 화제가 되면서, 많은 대중들이 그의 음악과 예술성에 대한 재평가를 하고 있는 중이며 또한 그는 오랜 공백 끝에 2019년 12월 6일 방송된 슈가맨 3를 통해 약 30년만에 본명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18년만에 무대로 복귀하게 되었다.
USC에 재학 중에 이범희의 눈에 띄어 한국에서 데뷔했다. 1집과 2집이 서울음반사를 통해 발매되었고 당시 10년짜리 비자(VISA)로 들어왔기 때문에 6개월마다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스탬프를 받고서 한국 내에서 활동이 가능했다. 양준일 본인이 슈가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6개월마다 스탬프를 찍어주던 담당자가 갑자기 "나는 네가 한국에 있는 게 싫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엔 절대 스탬프를 안 내줄 것이다."라고 하여 결국 부산 공연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출국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출입국관리소 담당자가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양준일이 이덕화에게 반말을 해서 방송정지를 당했다는 루머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긴 하다. 참고로 이 출입국관리소 담당자는 말도 안되는 것이 출입국을 막고 허용하고 아는 일은 법무부 장관만 가능하고 이는 엄연히 불법이다. 이게 지금 같으면 SNS를 타고 신상털이가 되었겠지만 이 당시 노태우, 김영삼정부시기에는 5공화국부터 이어진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들이 엄청났었다.
노래의 센스 자체는 다른 한국 가요보다 상당히 미국에 근접해 있어서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깡마른 몸에 큰 키와 긴 머리, 느끼할 정도로 보이는 지나친 미국식 퍼포먼스, 노래에 심히 몰입해서 정신없어 보이는 춤 등은 1990년대 초반 당시 코드와 맞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외모는 물론, 의상, 퍼포먼스에 대한 센스 또한 90년대 초반이라고 생각 못 할 정도로 탁월했으나 당시 트렌드에 맞지 않아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한 케이스
음악적으로 당시 미국 팝계의 뉴 잭 스윙, 하우스 등 최신 트렌드를 가요에 이식하려 한 시도가 돋보인다. 뉴 잭 스윙 음악은 몇 년 후에야 이현도에 의해 한국 가요에 접목되었으며, 터보나 룰라가 춤의 트랜드를 일부 계승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한 가지 옥의 티로, 그 당시 <리베카>는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표절곡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명확한 곡명을 밝히지 않아 몇가지 논란이 있었다.
프린스의 <Take me with you>와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실제 곡을 들어보면 멜로디 한두음이 겹칠지언정 멜로디 라인은 표절은 커녕 참고했다고 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르다. Take me with you의 멜로디 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음역 범위내에서 큰 움직임 없이 움직이지만, 리베카는 오히려 처음 음에서 계속 음이 떨어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걸 표절이라 하려면, 차라리 《학교종이 땡땡땡》이 《떴다 떴다 비행기》의 표절이라고 하는게 낫겠다.
그것보다 오히려, 자넷 잭슨의 <Miss You Much>의 경우 도입부 비트만 같은 것이 아니라, 도입부 Ho~ 가 나올 때까지 깔리는 신디사이저의 멜로디가 100% 일치하므로 굳이 표절이라고 한다면 Miss you much의 표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Take me with you는 도대체 왜...) 자넷 잭슨의 Miss You Much는 해당 신디사이저 멜로디가 배경으로 깔려 작게 들으면 들릴듯 말듯 나와서 못 들을 수도 있는데, 리베카의 전주 멜로디와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이 것이 같은 샘플링을 차용한 것인지, 표절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전주만 동일하고, 노래의 멜로디 라인은 완전히 다르므로, 표절이라고 하기 애매한 부분이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안 그래도 보수적인 당시 방송계와 심의계통 위원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었던 탓에 표절로 판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다른 활동곡들인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는 양준일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들이다.
당시 다른 방송사들에서 양준일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시각 일색이었던 것과는 달리, 개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서울방송(SBS)에선 양준일을 꽤나 열심히 밀어주었었다. 당시 SBS의 간판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쇼! 서울서울에서는 반고정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등장했으나, 당시 서울 등 수도권에서만 본방송으로 시청 가능했던 한계 그리고 극과 극으로 갈렸던 대중의 반응 때문인지,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또한, 중간중간 콩트 설정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언어 문제로 웃기만 하자 MC 정재환에게 '말 좀 하세요.'라며 핀잔을 듣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 그대로 3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아이돌로 이름을 날렸을지 모를 일. 외모 기럭지 춤 스타일까지 모두 요즘 트렌드에 맞는다. 활동 당시엔 느끼하고 이상하다는 평가가 많았으나, 그 당시 그의 무대가 담긴 유튜브 영상에는 지드래곤을 연상케 한다는 식의 댓글이 많다. 아예 2집 타이틀곡 <가나다라마바사>의 중반부에는 양준일 스스로“여잔지 남잔지 모르겠다”는 등의 세간의 평가를 셀프디스한 바 있다.
2010년 후반과는 달리 양준일이 활동하던 1990년대 초반 무렵엔 미남의 기준이 조금 달랐다. 대체로 뚜렷한 이목구비의 선 굵은 외모, 쌍꺼풀 있는 눈, 적당히 호리호리하거나 아예 건장한 체격 등을 갖춘 남자 연예인(이를테면 최재성, 최민수, 최수종, 변우민, 김민종, 손지창, 장동건 같은)이 주류였다. 그렇다보니 쌍꺼풀 없이 얄쌍한 외모에 긴 파마머리까지 갖춘 속칭 ‘기생오라비’ 스타일의 그는 오늘날과 달리 외모부터 먹히기엔 쉽지 않았다…라고 적혀있었으나, 이는 다소 과장된 서술로 보인다. 당장 90년대 최고 스타였던 서태지의 외모가 당시 여성들에게 얼마나 어필했는지를 생각해보자. 패션 또한 지금 보기에도 꽤 촌스럽지 않게 잘 입었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단정하지 않게 보였고, 여기에 방방 뛰어다니며 생소한 장르의 음악을 불러대니 대놓고 좋아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 뛰어난 패션감각은 어머니의 손길이 많이 닿았던 결과물이었다고. 결국 오늘날에 와서야 이 사람이 왜 안 떴을까 싶지만, 그가 활동했던 1990~93년엔 뜨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를 보면, '가사'가 당시 10대들에게 공감가는 면이 많다. 순정적인 가사는 물론, 당시 한국의 교육 실태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 등. 하지만 양준일은 재미교포 출신답게 정서적으로 붕 떠있었다. <Dance with me 아가씨> 역시 많은 외국어 가사에 같은 가사가 반복되니 마치 클럽음악처럼 느껴질 뿐, 딱히 10대들에게 정서적으로 와닿지가 않았던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 양준일은 신선하고 파격적이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막 깊게 공감하며 열광하지는 못하고 마치 팝송을 보는 듯한 거리감이 느껴지며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1994년 철이와 미애 2집 <뚜벅이 사랑>을 작곡하고 프로듀스했다.
2001년 V2의 정규 1집인 <Fantasy>를 끝으로 가수 활동을 중단했다. 당시 타이틀곡인 Fantasy의 무대는 물론 가사 또한 매우 독특해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사는 "그녀가 떠나는 꿈이었어. 빨래를 걷어야 한다며 기차 타고 떠났어.", 그리고 같은 앨범의 <Do You Speak English>의 "너 오브가 코스지" 등. 또한 <Oh my God>과 <Because>는 가사가 영어로만 이루어져있다.
V2 활동 시기에도 소속사와 계약에 문제가 있었으며 슈가맨에서 본인이 언급하기로는 계약서에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많았으나 영어를 가르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은 없었기에 은퇴 이후에는 일산에서 영어강사로도 활동했다.
상술했듯이 G-DRAGON을 닮은 활동 당시 모습이 2019년 유튜브에 돌아다니며 그 당시 모습을 보지 못한 1990~2000년대 생 사람들도 궁금해하는 존재가 되었다. 2012년 무한걸스, 2019년 프리한19 등에서 소개되기도 했는데, 방송국에서도 양준일의 근황을 찾지 못해 다음 팬카페 회원들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 심지어 라디오 코리아에 "양준일 씨를 찾습니다"라는 사연이 2019년 초에 나가기도 했다. 예전에 같이 라디오 방송을 했던 가수 윤종신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준일에 대해 "지금들으니 지대로 뉴 잭 스윙 ㅎㅎㅎ 아주 멋지다.. 무대매너도 캐간지.."라고 언급했다.
2019년 5월 그의 근황이 확인되었다. 2015년부터 한국인 부인과 아들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거주 중이며, 한인 레스토랑 서빙 일을 했지만 슈가맨 출연 이후 팬들과의 만남을 위해 사직했다고 한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팬카페 판타자이에서 그가 쓴 글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8월 12일에 방영한 옥탑방의 문제아들 40회에서 이날 90년대 지드래곤이라는 별명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사람으로 출제되었다. 이날 게스트였던 터보의 멤버 김정남과 가수 김완선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칭송했으며 김완선의 경우 1990년대 초반에 그와 함께 듀엣 무대를 서본 경험이 있었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 6일 방송된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 2회에서 재석팀 슈가맨으로 나오면서 드디어 매체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슈가송은 데뷔곡인 <리베카>.
출연 이전에 프롤로그에서 유희열이 그의 곡인 '가나다라마바사'가 소개되었는데, 단 한 개의 불도 들아오지 않았다.
당일 무대에 리베카가 나왔을 때 40대는 24 불이었고 10대도 유튜브의 영향 때문인지 제법 불을 켠 사람들이 많았으나 20~30대는 현저히 적었다.[18] 또 10대들 한정으로 이 노래가 지금 나오면 뜰 것인가에 대한 평가도 전원 '뜬다'로 호평을 보여 그를 놀라게 했다. 지금봐도 세련되고 트렌디해서 표를 던져준 듯 하다. 여담이지만 40대석의 남성 한명이 그와 이름이 비슷한 양준혁이라는 오답을 내뱉어 주변을 빵터지게 했다... 또 둘 다 1969년생 동갑내기다.
비록 외모는 세월이 세월인 만큼 변화가 컸지만 역변할 정도로 늙지 않았다. 50대 라고 밝히자 슈가맨 관객들이 놀라 웅성거릴 정도였다. 50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키도 훤칠하고 비율도 좋고 몸매도 늘씬한데다 몸놀림도 여전해 웬만한 젊은이 못지 않은 포스를 보였다. 성격도 정말로 사람이 착하고 순수해 보였다. 또한 90년대 지드래곤이라는 소릴 듣자 본인은 좋아하지만 지드래곤은 싫어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수 생활을 할 당시 겪었던 어려움[19]과 부당함[20]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샀으며, 순수한 영혼을 가진 성품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꼈다.
마지막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그는 "딱히 계획이라는 걸 세우지 않는다. 그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계획이라는 게 그나마 있다면 겸손한 아빠이자 남편이 되고 싶다."며 자유롭고 트렌디한 영혼을 가졌던 그답게 멋진 대답을 했다.
또한, 20대의 자신에게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뤄질수밖에 없어!'라는 명언을 남기며 힘들었던 젊은날에 대한 위로를 건네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방송 1주일 후 미국에서 보낸 감사인사 영상을 슈가맨에서 공개했다.
슈가맨 출연 후 유튜브에서는 선한 성품, 시대를 뛰어넘는 패션센스[21]와 외모(무쌍과 눈웃음), 자유로운 댄스 퍼포먼스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V2 시절의 Fantasy는 이미 합법적인 마약 수준.
본명 활동 시
1990년 1집 《겨울 나그네》
대표곡: 〈리베카〉
1992년 2집 《나의 호기심을 잡은 그대 뒷모습》
대표곡: 〈Dance with me 아가씨〉
‘V2’로 활동 시
2001년 1집 《Fantasy》
양준일 사진
양준일 인스타그램 사진
양준일 움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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