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문재인 프로필


기호 1번 문재인(文在寅)

정당 : 더불어민주당
출생 : 1953년 1월 24일 (64세)
종교 : 천주교 (세례명: 티모테오)
부모 : 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 
가족 : 배우자 김정숙, 슬하 1남 1녀
형제자매 : 2남 3녀 중 장남
신체 : 172cm, 67kg, B형
직업 : 정당인
학력 : 경희대학교 법률학과 졸업
경력 : (전)더불어민주당 당대표 , (전)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상)

민주통합당

65,336 (55.1%)

당선 (1위)

2012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14,692,632 (48.0%)

낙선 (2위)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출구조사 당선 예상


문재인 공식홈페이지 : http://moonjaein.com/

문재인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moonbyun1

문재인 트위터 : https://twitter.com/moonriver365

문재인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oonjaein/

문재인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user/moonriver365/


유년 시절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에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의 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에 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 아버지는 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을 제시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해야만 했다. 문재인의 가족은 거제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태어날 때에도 셋방을 살던 주인집에 임산부가 있다는 이유로, 산모가 진통 중에 이웃 집에 옮겨가 출산을 해야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으며, 이에 문재인의 생가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결국 문재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부산으로 이사했으며, 문재인의 서류상의 본적은 부산 영선동으로 되어 있다. 문재인은 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바로 위의 '신선성당'에서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먹어야 했다. 배급을 받으러 온 문재인에게 수녀들이 귀엽다며 자주 사탕과 과일을 쥐어주었기 때문에 문재인에게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감화가 되어 그는 천주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


학창 시절

1965년에 남항국민학교를 졸업한 문재인은 당시 명문이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 1968년에 졸업한 후에는 당시 명문고라 불리던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교 시절 초기에는 학내에서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낙망, 술·담배에도 손을 대며 방황을 하다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하였다. 문재인은 졸업 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도 일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다. 이후 경희대학교의 설립자이자 당시 경희대 총장이었던 조영식 박사가 문재인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하였고, 문재인은 그 권유를 받아들여 재수 후,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 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하여 당시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 해 6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 강제로 군에 징집되어 1975년 8월에 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서 복무했다. 군대 복무 중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했다.[12] 전역 후 1980년에 경희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청량리구치소에 수감 중, 경희대학교의 조영식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제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사회 생활

1980년 5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내려지면서 실시된 예비 검속으로 체포되어,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는 청량리구치소에서 받았다.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동기였던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 걸출한 인재들 사이에서도 일등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이 차석이었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리고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않았다. 당시 사법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이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였다.

이후 문재인은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부산에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랫동안 인권변호사 생활을 했다. 또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1996년 8월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조선족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 한겨레신문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무료로 변론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료 변론은 하지 않았는데,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 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 고작 1백만∼2백만원대의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1988년에는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했으며 , 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몇 차례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민정 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한나라당으로 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으며,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11월 6일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정치활동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노무현재단의 이사장 직을 맡아 고인의 기념 사업을 이끌며 정치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 사상구에서 5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2012년 12월 19일에 열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사퇴함으로써 사실상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섰지만 48.02%의 득표율에 그쳐 51.55%의 득표율을 기록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3.53%의 차이로 패해 대권을 내주었다.

대선에서 패배한 뒤,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다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제2대 당대표 선거에 당선되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장으로서 당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초대 당대표가 된다.

김종인 비대위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최고위원들과 함께 2선으로 물러나 2016년 1월 27일 기준으론 평의원 신분으로 돌아왔으며,  2016년 4.13 총선이 끝난 뒤로는 중앙 정치 무대와 거리를 두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대선 행보로 풀이되는 일정들을 소화해 왔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서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자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여 57%의 득표율을 얻어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대선 재도전에 나섰다.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더불어민주당 의사 결정 구조에 영향력을 끼칠 권한이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를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주류 세력인 친문계의 리더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최대주주로서 여전히 최고 실력자의 위치에 있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10대 공약

1. 일자리를 책임지는 대한민국 

-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일자리 81만개 창출

-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Smart KOREA 구현을 위한 민관 협업체계 구축 등으로 4차 산업혁명 선도

- 신생기업의 열기가 가득한 창업국가 조성

- 실노동시간 단축 통한 일자리 나누기

- 비정규직 격차 해소로 질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

- 최저임금 1만원 인상 (2020년까지, 소기업·자영업자 지원 대책 병행 마련) 


2.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 대통령의 특권을 국민께 반납

-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및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 및 지방분권에 따라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추진

- 국가정보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전면 개편

- 감사원 독립성 강화


3.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산을 위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조사 특별위원회 설치?와 부정축재 재산에 대한 몰수 추진 

- 재벌의 불법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특혜 근절 등 재벌개혁 추진

- 문어발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방지

- 반부패 개혁으로 병역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원천 배제 추진 

- 입시·학사비리 연루된 대학은 각종 지원 배제·중단으로 투명한 대학 입시 환경 마련

- 국가청렴위원회 설치 등 반부패 개혁 위한 제도적 장치 보완


4. 강한 안보로 튼튼한 대한민국

- 한미동맹 강화와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 추진

- 방산비리 근절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구축 등 자주 국방력 확보

- 첨단 무기체계 도입으로 과학군·기술군 중심의 강한 군대 육성? 해군·공군 전력 강화 등의 각 군 균형발전 추진

- 사병 급여·군인 근무여건 개선 등 강한 군대 육성


5. 청년의 꿈을 지켜주는 대한민국

- 청년고용할당제 확대

-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

- 청년?신혼부부 집 걱정?임대료 걱정 해결

- 알바 존중법 도입


6. 성평등한 대한민국

- 여성 정책 기구 권한 강화

- 비정규직 여성 차별 금지, 여성 고용 우수기업에 포상·조세감면,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 등 인센티브 제공으로 여성 일자리 차별 해소

-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여성 관리자 비율을 확대? 직장 내 승진에 있어서 여성에게 작용하는 유리천장 타파

- 젠더폭력 근절


7. 어르신이 행복한 9988 대한민국

- 차등 없는 기초연금 30만원 지급(어르신 70%)? 현재 월 10~20만원 차등 지급 → 30만원 균등 지급

- 노인일자리 및 수당 2배 인상 

- 국민연금·퇴직연금을 통한 노후 소득 보장 강화 

- 노년 건강 증진 사업 확대


8. 아이 키우기 좋은 대한민국

- OECD평균 수준의 교육재정 투자와 유아에서 고등학교까지 공교육 비용 국가 책임 부담

- 0세부터 초등학교 6학년생 자녀의 돌봄 부담 해소

- 육아휴직 확대

- 유연근무(‘10 to 4 더불어 돌봄 제도’) 도입

- 아동수당 도입

-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 조성


9.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사업하기 좋은 대한민국

-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 신설하여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권익 보호 추진 등 중소·벤처 선순환 생태계 구축

- 영세 가맹점의 범위 확대 및 우대수수료율 인하 등 

- 임차인 보호를 위한 임대차보호법 개정 등

- 대기업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 등에 대해 대규모점포에 포함시켜 규제하고, 입지를 제한하여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영업 보장

- 소규모 영세자영업 지원 강화


10.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

- 청와대 중심의 재난대응 콘트롤 타워 구축

- 노후 원전 폐쇄 및 신규 중단 등 원전사고 걱정 해소

- 임기 내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 30% 감축  

- 감염·질병 관리 체계 획기적 강화

- 재난사건 대응 체계 강화


가족관계

아버지 : 문용형 (1920년 ~ 1978년)

어머니 : 강한옥 (1928년 ~ )

누나 : 문재월 (1949년 ~ ) 주부

여동생 : 문재성 (1955년 ~ ) 주부.

여동생 : 문재실 (1957년 ~ ) 지금 부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고 계신다고 한다.

남동생 : 문재익 (1959년 ~ ) 해양대 해사대학 34기 해사수송과학부 졸업 후 STX팬오션에서 선장으로 근무 중 사고가 생긴 뒤 SK로 이직하게 된다. 현재는 도선사 시험 준비 중.


배우자 : 김정숙 (1954년 ~ )

아들 : 문준용 (1982년 ~ ) : 육군 병장 때 찍은 사진, 2012년에 찍은 사진.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 디자인학부 시각멀티미디어디자인 전공으로 졸업하고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고, 2011년 광주비엔날레에 '마쿠로쿠로스케 테이블'이라는 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다. 2014년 2월 결혼, 장인이 예장 통합 측 목사라고 한다.

딸 : 문다혜 (1983년 ~ ) 2010년 3월 결혼. 주부.


아들특혜채용 논란

문재인의 아들 문준용은 2006년 12월 한국고용정보원 일반직 5급에 응시해 합격했고, 2010년 1월 29일 퇴사 하였다. 입사 4개월후 특혜 논란이 제기 되었고 2017년까지 의혹이 반복 제기되었다. 언론사 검증 결과 공통적으로 정리된 것은 의심스러울 만한 정황이 포착되었으나 확증은 없다는 것이다. 2007년 노동부의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문준용은 채용 자격이 충분하고 특혜를 받지 않았다고 밝혀졌고 다만 한국고용정보원은 채용 과정에서 인사규정 미준수로 관련자 조치, 기관 주의조치를 받았다. 채용 의혹 자체가 사실로 드러난 적은 없으나, 문재인 측의 해명과정 중 일부 발언이 거짓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책이름(이미지)

책소개 

 지금 대한민국이 원하는 대한민국을 문재인에게 묻고 문재인이 직접 답한다! 


세월호 그리고 박근혜 게이트를 겪으며 대한민국 국격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주 평범한 국민들조차 남녀노소 구분 없이 촛불을 들고 변혁을 외치기 시작했다. 총체적인 국가 위기 앞에서, 한결 같은 정치인 문재인은 다시 희망을 말한다. 국민 모두의 뜻이 하나로 모인 지금이야말로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그는 그릇된 과거와 부패 청산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상식과 정의의 회복이라고 역설한다. 

가장 높은 인기와 가장 많은 오해 위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그 사람, 문재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는 정치인 문재인을 만든 기억과 역사, 그가 만든 인권과 정치, 그가 만들 민주주의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그의 생생한 육성으로 기록한 대담집이다. 평범한 이웃과 국민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을 정서적으로 물을 수 있는 인터뷰어로 시인, 소설가이자 기자인 문형렬이 함께했다. 

이 책은 ‘기억’, ‘동행’, ‘광장’, ‘약속’, ‘행복’, ‘새로운 대한민국’ 등 6개 주제로 구성, 평범한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던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문재인이 만나고 겪어온 사람들, 현재 대한민국이 겪는 진통의 시작과 해결책, 그가 설계하고 다시 세우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청사진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문재인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 25’에서는 ‘개헌’, ‘국민성장론’, ‘사드 배치’, ‘섀도 캐비닛’, ‘호남 민심’ 등 첨예한 주제들을 직접 물었고, 솔직하고 구체적인 문재인의 답변을 수록했다.

 18대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의 자기 반성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시작! 


문재인의 대선 평가서 『1219 끝이 시작이다』. 이 책은 지난 18대 대선 이후 일 년만에 자기 성찰과 반성, 현 정부에 대한 비판까지 담고 있다. 문재인은 대선 이후 힘들었던 시간과 국민에 대한 미안함 또 박근혜 정부가 현재 행하고 있는 정치적 행보에 대한 평가를 냉정하게 토로하고 있다. 더불어 자신과 민주당도 냉정한 평가를 통해 앞으로의 도전 과제와 시작을 알리고 있다. 

문재인은 이 책을 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자신에 의한 대선 평가를 하고 있다. 자신의 대선 패배의 이유 중 하나로 ‘평소의 준비 부족, 실력 부족’이라 평가하며 자신을 향한 비판과 민주당을 향한 평가를 가감 없이 내비친다. 특히 패배의 원인을 ‘우리 안의 근본주의’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렇듯 객관적으로 패인을 분석하고 제시하며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희망과 믿음을 만들어 나가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한 30년 동지 문재인, 두 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 


『문재인의 운명』은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비사를 비롯한 30년 동행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가 처음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함께 노동·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기부터 서거 이후 지금까지의 30여년 세월 동안의 인연과 그 이면의 이야기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만남’ ‘인생’ ‘동행’ ‘운명’ 총 4장으로 나누어 정치적 파트너로서 뿐만 아니라 친구이자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그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문재인의 비전과 약속 


정치인 문재인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하여 사람이 먼저인 세상,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가 숨 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책은 저자가 정치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했던 발언, 정책에 대한 인터뷰, 세상과 소통했던 각종 기록들을 통해 저자가 바라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

 문재인과 김인회가 이야기하는 검찰개혁의 본질!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현재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문재인과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사법을 강의하고 있으며,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인회가 만나 참여정부 하에서의 검찰개혁 문제를 분석하였다. 검찰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검찰이 그동안 어떻게 국민 위에 군림해왔는지 시대별로 정리하고, 검찰개혁에 관여했던 강금실, 천정배, 문희상, 김선수 등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풍부하게 실어 검찰개혁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왜 실패했는지 밝혀냈다. 또한 검찰개혁 과정에서 검찰의 본질을 목격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증언을 통해 검찰개혁을 왜 꼭 해야만 하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검찰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노무현 정신의 의미와 가치를 호흡한 현장 속으로! 


서울과 부산, 광주에서 열린 <1기 노무현 시민학교 : 시민주권강좌>를 모아 엮은『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2008년 2월, 무거운 짐을 벗고 보통 사람이 된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귀향해 농부가 되었고, 시민 노무현이 되었다. 대통령의 관심은 언제나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가?'였다. 갑작스러운 서거로 인해 시민 노무현의 못다 한 사색과 고민은 '노무현 시민학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제1기 노무현 시민학교는 '시민주권강좌'를 주제로, 열 명의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담긴 시대 정신을 되새기며 강연한 것이다. 이 책은 강좌의 내용을 원문 그대로 살린 것으로, 수강자들의 질문과 답변을 함께 실어 생생한 현장감을 더했다.



제 19대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김정숙 성악가
출생 : 1954년 11월 15일 (만 62세), 서울
학력 : 경희대학교 성악과 졸업  외 2건
경력 : 서울시립합창단 단원


사이트

김정숙 트위터 : https://twitter.com/happykjs1219

김정숙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happykjs1219


생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울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한복집을 했으며 아버지가 몸이 안좋아서 요양차 강화도로 이사, 문재인과 결혼 당시에는 강화도에서 목장을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1954년 11월 15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 활동 했었다. 문재인과 대학시절 법대 축제에서 파트너로 만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때만 해도 오다가다 인사하는 정도의 사이 요새말로 썸타는 사이였다가 시위하던 문재인이 선두에서 확산되기 전의 응축된 최루가스를 직격당해 쓰러졌다. 이때 김정숙 여사가 간호를 해주면서 사이가 깊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1981년 문재인이 사법연수원 시절에 결혼했다


결혼할 당시의 프러포즈가 조금 재미있다. 김정숙 씨가 먼저 와서 "재인이 너 나랑 결혼할 거야 말거야? 빨리 말해!"라고 해서 문재인이 얼떨결에 어... 아... 네... 받아들였다고. 문재인이 본인을 소개한 '59문 59답'에서 직접 밝혔다. SBS 힐링캠프 문재인편에서도 유사한 일화를 소개했다. 오랜 교제기간에도 결혼이야기를 하지 않는 문재인에게 김정숙이 결혼 언제할꺼냐고 불만을 털어 놓아 결혼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김정숙으로 부터 취재한 한혜진이 소개했으며, 문재인은 당시 '어 그렇게만 이야기 하던가요? 술먹고 그랬단 이야기는 안하던가요?'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을 자아냈다.



 책이름(이미지)

책소개 

 보통사람 정숙씨가 만난 사람과 세상


공연이나 영화 보는 거, 전시회 가는 거, 요리하면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거 좋아하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에든 있는 보통 아줌마였던 정숙씨.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대선 후보의 부인이 돼 있었다. 


참여정부가 끝난 후 양산으로 낙향해 남편 문재인과 밭도 가꾸고 집도 고치며 살던 아줌마 정숙씨는, 하루 아침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진 '대선후보의 부인'이라는 수식어에 고민도, 원망도 있었지만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남편을 믿고 사람과 만나기 위해 세상으로 나왔다. 대선 후보로 나선 남편 문재인을 돕기 위해서다. 


음대를 나와 젊은 시절 한때 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며 솔리스트를 꿈꾸기도 했던 정숙씨가 남편을 돕는 방법은 지금까지 한국의 영부인상과는 조금 다르다. 평소에도 문화예술 분야만큼은 남편보다 훨씬 낫다고 자부하던 그녀는 연극, 영화, 방송, 만화, 대중음악, 패션디자인, 사진, 문학 등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에게 직접 인터뷰를 요청한 뒤 넓게는 문화와 예술에 대해, 좁게는 인터뷰이가 몸담고 있는 분야의 현실적인 어려움들에 대해 소박한 생각들을 나눴다.


아홉 명의 인터뷰이들은 인터뷰어가 대선 후보의 부인이라는 점을 알고 응했기에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상견례 차원의 덕담이 아닌 실속 있는 내용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남편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에 상상력을 보태주고 싶었던 그녀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얻은 것들을 기회가 된다면 정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도 염두에 뒀다.


상대에 따라 언니나 동생처럼, 때론 이모처럼, 친구처럼, 연인처럼 변신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결국 속 깊은 이야기들을 끌어내 준 정숙씨. 이 책으로 만난 고마운 이들은 그녀에게 4,800만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다. 그 지혜가 우리 보통 사람들이 꾸는 꿈과 행복의 실현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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