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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 프로필


나경원 국회의원
출생 : 1963년 12월 6일, 서울
소속 :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종교 : 천주교 (세례명: 아셀라)
의원 선수 : 4
의원 대수 : 17·18·19·20
지역구 : 서울 동작구을
당내 직책 : 원내대표
배우자 : 김재호(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자녀 : 1남 1녀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 수료  외 3건
수상 : 2017 제4회 대한민국 나눔봉사대상 장애인복지부문  외 8건
경력 : 2018.12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외 28건


나경원 경력

부산지방법원 판사

인천지방법원 판사

서울행정법원 판사

한나라당 장애인복지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 학력

계성초등학교

숭의여자중학교

서울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제법학 박사 수료



1963년 12월 6일 홍신학원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나채성의 4녀 중 장녀로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본관은 나주이며,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출신이다.


계성초등학교 시절 아동극 연출 지도 교사로 온 배우 서인석에게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어 연극부 활동을 하기도 했다. 숭의여자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여자고등학교 시절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체 557명 중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였으며, 30세가 되던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7]같은 학교 동기인 김재호와 결혼하였고, 1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다운증후군이 있다


사법연수원 24기 를 10위권 이내의 성적으로 수료하고 1995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어 4년간 근무하였다. 이후, 1999년 인천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행정법원까지 총 7년 6개월간 판사로 재직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선 기간, 이회창의 요청에 따라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판사가 판사를 그만두고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추미애 이후 두 번째다. 나경원은 ‘소신 판결을 해온 이회창 후보를 법관시절부터 존경해 왔다’고 밝혔다.


2003년 3월 이회창이 대선에 패배하자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7월 법무법인 바른에서 실제 변호사 업무를 하진 않았지만, 주요 구성원이었다.


2004년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했다. 3년 후인 2007년의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그의 당선에 기여했고,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등 경쟁 중인 후보자들 측에서 제기했던 이명박 후보의 BBK 비리 의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주어는 없다"라는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난히 당선되면서 유력한 여성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1년 전보다 구체적으로는 후술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전까지는 차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최고위원 회의에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을 당에서 총력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하였다가 유승민 최고위원에게 반박당하였다.


2011년 후반기 서울특별시의 무상급식 논란과 이를 둘러싼 주민투표가 무산된 과정에서 여당 소속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자진 사퇴하여 실시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참패했다. 


결국, 박원순은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53.4%의 득표율을 얻어(2,158,476표),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7%p 가까이 되는 득표율로 누르고 압승하면서 제35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문제는 단순히 선거 하나를 패배한 정도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미지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점이었다. 박원순 후보 측과 일부 언론들로부터 제기된 '호화 피부시술' 의혹, '초선 의원 시절인 2004년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 참석' 등의 행적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사건사고 항목을 참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당시의 여러 의혹 제기로 나경원은 그동안 쌓아 온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다. 결국 이듬해인 2012년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출마조차 못했고, 한동안 정치권에서 멀어져야 했다.


3년 후인 2014년 7월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구에 한나라당의 후신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정의당의 노회찬을 상대로 단 929표 (1.3%) 차의 신승을 거두어 당선,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이로써 17~19대 연속으로 3선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된 유기준의 뒤를 이어 19대 국회 후반기의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6년 4월의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지역구는 현재 19대 국회에서와 같은 동작 을이었으며, 2016년 3월 12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로부터 '동작 을' 후보로 공천받았다.

선거결과 약 43%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다만 자신이 소속한 여당 새누리당이 원내정당 1위에도 못 미치면서 총선 패배가 이번 당선에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있고 오히려 새누리당 수도권 4선이라는 본인의 경쟁력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 양립하고 있다.


2016년 12월 27일 비박계 29명 의원이 탈당하는 와중에 보류선언을 해서 네티즌들로부터 큰 질타를 받고 있다. 나경원 신당行 보류, 정강정책 등 노선 갈등 때문인 듯 그러나, 이혜훈 의원 등에 따르면 신당의 원내대표 자리를 보장받지 못해 보류했다는 설과, 전날 밤 울면서 김성태에게 전화한 것으로 보아 압력을 받고 있다는 설 등이 있다.



12월 9일, 여의도 바닥에서 많이 언급되던 나경원 의원과 김학용 의원의 2파전으로 확정되었다. 나경원 의원이 친박계 대표로, 김학용 의원이 복당파 대표로 원내대표 선거를 치루게 되었다. 최근 친박계가 당을 지킨 사람들이라며 자신들을 수당파란 프레임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부터 나경원 후보에게 유리하게 가는 거 아니냐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원내대표 선거란 것은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거지만, 친박계 수가 적은 게 아니라 오히려 많은 편이고 친박계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상황이니만큼 불리하지 않단 것만큼은 확실하다.


12월 11일 의원총회에서 유리한 상황에 걸맞게 68표를 득표하여 35표를 얻은 김학용 의원을 압승,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친박이 밀어준 후보가 복당파 지지 후보를 압도해서 이겼단 것으로 인하여 당대표 선거는 더 치열하게 부딪칠 것으로 전망된다.


나경원 딸 성신여대 부정입학 의혹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2016년3월17일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의 딸인 김아무개씨가 2012학년도 성신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했지만, 학교 측이 이를 묵인하고 특혜를 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며 부정 입학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나경원은 이를 보도한 뉴스타파 황모 기자를 고소했고 재판에 넘겨진 황모 기자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서정현 판사는 8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황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소 과장되거나 평가로 볼 여지가 상당하지만 허위 사실을 적을 것이라 볼 수 없다"며 "보도 내용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써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자위대 행사 참석

2004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위대 창립 50돌 행사를 열였을 때 나경원이 행사에 참석하여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나경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제가 국회의원 되자마자였는데 일본 대사관에서 하는 행사라서 가야된다고 해서 갔는데 가서 보니까 자위대 창립 행사라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 대사관의 방명록 이런것을 보시면 제가 참석 안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라고 밝히었다. 이후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하여 "자위대 행사에 참석했다는 비난의 글이 많다. 정황은 이렇다", "초선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행사 내용을 모른 채 갔다 현장에서 뒤늦게 알고 되돌아 왔다", "처음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 답변한 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변명처럼 보일까 우려되기도 했고, 행사 내용을 미처 살피지 못한 저의 불찰도 있었기 때문", "오늘 트위터에 속 시원하게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글을 드린다"라고 밝히었다. 하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는 “서울의 중심에서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 행사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참석한다는 게 말도 안 돼 국회의원실에 직접 공문을 보냈다”며 나경원이 무슨 행사인지 모르고 갔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해명이라고 반박하였다. 윤 대표는 지난 해 나 의원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50만 국민 서명’에 함께 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윤 대표는 “초선 의원 때에 비해 지금은 위안부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학재단 관련

MBC 방송에서 라디오 인터뷰 도중에 홍신학원과 관련된 질문을 받자, 나경원은 "아버지의 학교고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홍신학원은 아버지 학교임과 동시에 나경원 후보가 2001년부터 현재까지 이 학교의 이사로 있었다. 정봉주 전 의원은 “나경원 후보가 심각한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아버지 학교니까 나한테 얘기하지 마라, 이건 말이 안 맞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봉주 전 의원은“나경원 후보가 ‘그 학교는 감사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라며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화곡중·고, 화곡여상을 지칭했는데, 화곡중·고등학교는 이미 우리보다 앞선 16대 국회 때 국회에서 감사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한 50일 동안 시간을 끌다가 결국 그 학교만 유일하게 감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왜 제출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행정실장이 감사 자료를 불태워버렸다고 국회에 직접 해명을 할 정도였다. 학교 자료를 불태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학교다”라고 지적했다.


SNS 셀프 지지

2011년 10월 15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스스로를 지지하는 ‘자화자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자신이 작성한 글을 리트윗(재인용)해 “콘텐츠가 있는 공약과 정책 정말 멋집니다” 등 자신을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에 네티즌들이 ‘나르시즘 나경원’ ‘자화자찬도 유분수’ ‘알바의 실수인가’ 등의 지적을 하자 나경원 측은 2011년 10월 16일 해당 트위터 글을 삭제하고 “확인 결과 시스템 간에 충돌이 일어나 계정 연동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현재 오류를 바로 잡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1년 10월 20일 한 트위터 사용자가 나경원 트위터 멘션 오류에 대해 트위터 본사에 문의한 내용을 온라인에 게시했는데 트위터 본사 답변에 따르면 “나 후보 측의 트위터 글은 트위터 내부 오류나 장애가 아니다”라며 “후보자는 트윗을 포스팅 하기 위해 외부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이어 “이같은 오류나 장애는 트위터가 아닌 이 어플리케이션에서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며 트위터 계정 연동 오류가 아니라고 밝혀 '계정 연동 시스템 오류'라던 나경원의 해명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나경원 선거 결과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한나라

7,613,660 표

35.76%

비례대표 11번

당선

초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서울 중구

한나라

23,609 표

46.70%

1위

당선

재선

10·26 재보선

35대

시장

서울특별시

한나라

1,867,880 표

46.21%

2위

낙선

민선 5기

7·30 재보선

19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을

새누리

38,311 표

49.90%

1위

당선

3선

총선

20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을

새누리

44,457 표

43.41%

1위

당선

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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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가대표 축구감독 박항서 프로필


박항서 축구감독
출생 : 1959년 1월 4일 (만 59세), 경남 산청군
소속팀 :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학력 : 한양대학교  외 1건
데뷔 : 1984년 '럭키 금성' 입단
수상 : 2018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외 3건
경력 : 2018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항서 학력

생초초등학교

생초중학교

경신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체육학과 (1977년 입학)



축구 선수 시절

1977년 제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으며[1] 1979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인 충무에 선발되었다. 1981년에는 1진인 화랑팀에 선발되었다.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고, 그 해 군에 입대하였고 육군 축구단 충의에서 활동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 (현 FC 서울)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1988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축구 지도자 시절

1988년 은퇴한 직후에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지내다가 19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년 2월까지 활동하였다.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하였다.


2000년 10월 허정무 감독이 사퇴한 뒤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고, 12월 한·일 정기전에는 임시 감독을 맡았다.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선임되자,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단의 융화를 일궈내는 등 2002년 FIFA 월드컵 4강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나자 2002년 8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나,[3]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아 무보수 임시 감독이라는 논란이 나왔고, 대한축구협회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고문 자격으로 벤치에 착석시키려고 하자 불만을 표출하여 엄중 경고를 받았다. 결국 9월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데 그쳐 10월 아시안 게임 폐막 후 경질되었다.


이후 2003년 포항 스틸러스에 코치로 입단하여 2004년까지 활동하였고, 그 뒤 잠시 전남 드래곤즈 기술 고문을 맡았다.


2005년 8월 새롭게 창단된 경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7년 정규 리그 4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포항 스틸러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에서 패하여 5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구단 내부 갈등으로 인하여,11월 경남 FC에서 물러났다.


2007년 12월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에 취임하여, 팀의 2008년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과 2009 시즌 6위로 챔피언십 진출 및 최종 4위를 이끌었으나 2010 시즌에는 10위에 그쳐 그 해 11월 5일 자진 사임하였다. 이후 이수철의 후임으로 2011년 상주 상무의 감독직에 올라 1부 리그로 승격했으나 1년만에 2부리그로 강등, 2013년 2부리그의 명칭 변경 후 2013년 K리그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최초 K리그 챌린지 1위에 오르며 1년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였으나 승격하자마자 K리그 클래식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2014년 K리그 클래식 12위로 1년만에 재강등되는 등 강등의 아픔을 두번이나 겪었다. 하지만 강등되자마자 2013년과 마찬가지로 2015년 K리그 챌린지 1위를 거두며 재승격하였으며, 2015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로 인해 상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창원시청 축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1년만에 현장으로 귀환하였고 프로팀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박항서의 취임은 큰 기대를 모았다. 전반기만 해도 창원시청은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리그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를 충분히 노려볼만 했으며, 6월에 개최한 내셔널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후반기가 접어들수록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력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며 순위가 급하락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 감독 박항서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인 및 U-23 감독으로 선임되어 10월에 취임했다. 한국인 지도자로는 역대 4번째로 외국 성인 대표팀을 맡는 감독이 되었다.


처음 취임했을 때 베트남 현지에선 체력이 다소 약하다는 식으로 귀띔을 해줬다지만, 정작 박항서 본인이 선수들의 체력을 테스트해 본 결과 전원이 합격할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훗날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은 체력이 약하다'라는 이 말이 베트남에 전해져 내려온 뿌리깊은 선입견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축구선수를 시작할 때부터 언론과 선배들이 '우리는 체력이 약하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 왔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아예 심리적인 한계선으로 자리잡아버린 것. 이것을 타파한 것도 박항서호의 선전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영양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했는데, 아침식사를 쌀국수로 해결하는 등 다소 불균형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협회에 개선 요청을 했고, 그 결과 삼시 세끼 모두 고기, 달걀, 우유 등의 단백질이 대거 포함된 식단으로 바뀌었다. 박항서의 부임 이후 체력면에서 더 좋아진건 덤이며, 선수들 또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게 되어 좋아했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이 진단한 베트남 선수단의 근본적인 약점은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 그래서 박항서 본인이 직접 패싱 게임에 참여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고, 그 동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던 포백을 버리고 스리백을 도입했는데 초창기엔 비판을 꽤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부임 당시엔 프로 무대에서 밀려나 실업 리그에서 감독을 하던 축구인을 데려왔다는 일부 팬들의 부정적 평가가 있었지만, U-23 대표팀을 이끌며 10년동안 못 이겼던 태국을 원정에서 격파하는 비범함을 보여주었다. 득점할 때마다 히딩크가 생각나는 화끈한 펀치 세리머니로 인기를 끈 것은 덤. 참고로 전임 응우옌 후이 탕 감독이 사임한 이유가 태국전에서 0:3으로 완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앞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2차 예선에서도 태국을 상대로 2전 전패를 기록하자 그 여파로 당시 감독이던 미우라 토시야가 경질되기도 했다. 그만큼 베트남한테 태국은 난적이었는데, 박항서는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승리를 거두면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진 것이다.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조별 리그에서 강 팀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 호주, 시리아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조 최약체로 분류되었으나, 1차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비록 1:2로 역전패하기는 했으나, 선제골을 먼저 넣고 대한민국의 페널티킥을 선방하기도 하면서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2차전 호주전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응우옌 꽝 하이의 골로 1:0으로 승리했고,[17] 마지막 3차전 시리아전은 0:0으로 비기면서 한국에 이어 조 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1월 20일, 8강전에서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 이라크를 상대로 난타전 끝에 3:3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하여 동남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때의 상황은 2002년 당시 한/일 월드컵 상황과 매우 비슷했다.


그리고 카타르와의 준결승전도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하여,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AFC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룩했다. 또한 동남아시아 최초의 결승 진출이기도 하다. 이 과정도 드라마 같은데, 전반에 39분에 페널티 킥으로 선제 실점을 허용했지만, 베트남의 에이스 응우옌 꽝 하이가 69분에 동점골을 넣었고, 이후 87분에 카타르가 문전 혼전 상황에서 추가골을 넣어 2:1로 끝나려나 싶었는데, 불과 1분 뒤에 꽝 하이가 다시 동점골을 넣으면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18] 승부차기에서는 첫 번째 키커 응우옌 꽝 하이가 실축을 했으나 골키퍼 부이 띠엔 중이 두 번째, 다섯 번째 키커를 막아내며 영웅이 되었다. 띠엔 중은 카타르가 찬 5번의 슛의 방향을 모두 제대로 읽는 활약을 보였다. 화려한 준비 동작으로 키커의 정신을 흐트린 건 덤이다.


준결승전이 끝난 시점에서 베트남 정부는 선수단 전원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박항서 감독과 골키퍼 부이 띠엔 중, 공격수 응우옌 꽝 하이는 3급 노동훈장을, 나머지 선수단에게는 1급 훈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로 베트남에서는 숫자가 클수록 격이 높다. 3급 노동훈장이 1급 훈장보다 더 큰 상이다.


우즈벡과의 결승전에서는 경기 내내 폭설이 내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 경기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지만 연장 후반 종료를 1분 남겨두고 안드레이 시도로프에게 결승골을 허용해 결국 1:2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베트남 국민들은 끝까지 잘 싸워준 선수들을 향해 끊임없는 박수를 보내며 격려했고, 선수단은 열렬한 환호 속에 카 퍼레이드를 벌이며 귀국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베트남의 영웅이자,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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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종민 프로필(with 황미나)


김종민 가수
출생 : 1979년 9월 24일, 서울
신체 : 키 175cm, 몸무게 68kg, 혈액형 O형
가족 : 어머니, 누나, 여동생
종교 : 무종교
그룹 : 코요태
소속사 : KYT 엔터테인먼트
학력 : 목원대학교 언론광고홍보대학원 언론학 석사  외 5건
데뷔 : 2000년 코요태 정규 앨범 'Passion'


김종민학력

서울창도초등학교 (졸업)

도봉중학교 (졸업)

도봉정보산업고등학교 (졸업)

김천대학교 음악학과 (학사)

목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사)

목원대학교 언론광고홍보대학원 언론학 석사과정 (제적)


김종민 사이트

김종민 팬카페 : http://cafe.daum.net/kimjongmins


1996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엄정화 등의 백댄서를 맡았던 안무팀 《"프렌즈"》의 댄서로서 활동하다가 코요태를 탈퇴한 전 멤버 차승민을 대신하여 3집 앨범 제작 당시 객원 멤버 자격으로 2000년 10월 29일 합류한 후 정규 멤버가 되었다. 2000년 11월 데뷔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한번 더 보았다. 본인이 가고 싶었던 학과는 무용학과였으나 성적이 안 돼서 못가게 되었다. 그렇게 김천대학교 음악과에 01학번(2001년)으로 입학했고 2003년 목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로 편입하였다. 2005년 목원대학교 언론광고홍보대학원까지 진학했으나 바쁜 스케줄로 수업에 잘 나가지 못해 제적되었다.


2007년 11월 15일부터 2009년 12월 18일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였으며 소집해제 이후 활동을 재개하였다. 첫 활동은 군 입대 전 마지막 활동이었던 KBS《해피선데이-1박2일》 프로그램으로 복귀하였다. 2007년 8월 5일 KBS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1》의 멤버로 합류, 2012년 3월 4일 KBS《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2》의 멤버로 합류, 2013년 12월 1일 KBS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의 멤버로 합류하였다. 따라서 시즌1부터 시즌2, 시즌3까지 모두 출연한 KBS 《해피선데이-1박 2일》의 최장수 멤버다. 2016년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김종민♥황미나, ‘종미나 커플’의 로맨틱 케미


김종민-황미나 커플은 톱스타들의 리얼한 연애를 보여주는 화제의 프로그램 ‘연애의 맛’을 통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종미나 커플’이라는 귀여운 애칭이 붙은 두 사람은 첫 커플 화보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함 없이 다양한 포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황미나는 로맨틱한 겨울 패션 스타일링과 함께 다양한 핸드백을 매치하여 로맨틱한 데이트룩을 스타일링했다.  


블랙 컬러의 목폴라 니트와 블랙 미니 원피스를 레이어드한 룩에는 클래식한 트위드 디자인과 체인 스트랩 디테일이 돋보이는 크로스백을 매치했고, 올리브 컬러의 롱 니트 원피스와 골드 컬러의 셔츠에는 유니크한 컬러 플레이가 돋보이는 미니 사이즈 크로스백을 포인트로 완벽한 커플룩을 보여주었다. 





김종민의 그녀 황미나


황미나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xoxo_mingna/


1993년 생으로 OBS를 거쳐 현재 TV조선 기상캐스터로 근무김종민과는 14살 차이이구요.


극동대학교 항공관광학과를 졸업하고 키는 169Cm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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