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수상

2008년, 2009년, 2010년, 2015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2008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2008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2008, 2009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상 

2008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2015 WBSC 프리미어 12 MVP


국가대표 경력

2008년 하계 올림픽

타율 0.421 19타수 8안타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타율 0.393 28타수 11안타

2010년 아시안 게임

타율 0.500 10타수 5안타

2014년 아시안 게임

타율 0.421

2015년 프리미어 12

타율 0.333 33타수 11안타, 대회 MVP 선정


아마추어시절

서울특별시 출신으로 서울쌍문초등학교와 신일중학교를 거쳐 신일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신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받을 정도로 타격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 주었으나, 외야수로서는 다리가 느리고 근성이 없다는 스카우터들의 평가로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 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에 1차 지명된 투수 남윤희가 두산 입단을 거부하고 텍사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으로 입단하여 그와 같은 고등학교이던 김현수를 지명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두산 베어스 시절

2006년 ~ 2007년 시즌

2006년 신고선수(연봉 2천만원)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주로 2군에서 활동하다가 2007년부터 1군 경기 99경기에 출장하여 2할7푼3리, 87안타의 기록으로 수준급 외야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신일고등학교 재학시절엔 스위치히터로 종종 나섰으나, 프로 데뷔하면서 좌타석에서만 나오게 되었다.


2008년 시즌

2008 시즌에는 126경기(전 경기)에 출전하여 168개의 안타, 0.357의 타율, 0.454의 출루율로 타격왕과 최다 안타,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골든 글러브 상(외야수 부문)도 수상하였다.2008 시즌 후, 연봉 계약 협상에서 전년 대비 200% 인상인 1억 2천 600만원에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억대 연봉에 진입하였고, 200% 인상은 두산 베어스 연봉 협상 사상 최대 인상율 타이기록이다. 기계같은 타격을 보여주기 때문에 별명은 타격 기계, 기계곰이다.


2009년 시즌

2009 시즌, 지난 시즌에 비해 월등히 향상된 장타력을 보이며 일약 한국 프로 야구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팀의 주포이자 4번 타자 김동주가 잔부상에 시달릴 때에는 4번 타자로서 자주 경기에 출장하기도 하였다. 또 2009 시즌 중 주포지션인 좌익수가 아닌 1루수로서도 출전한 바가 있으며, 김경문 감독이 2010 시즌에는 4번타자 1루수로 기용한다고 이야기했다. 2009 시즌 올스타전에 역대 최다 득표로 출장한 바 있다. 2009 시즌 김현수는 3할5푼7리 를 기록했음에도 타격왕이 되지 못했다.(타격왕 박용택 3할7푼2리) 2009 시즌 후, 연봉 계약 협상에서 전년대비 100% 인상인 2억 5천2백만원에 체결 함으로써 5년차 타자 최고 연봉을 받게 되었다.(전 기록 이병규 2억/2001년) 김현수는 2009 시즌 3할5푼7리 를 기록하면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2시즌 연속 3할 5푼 이상을 기록한 타자로서 진기록을 세웠다.


2010년 시즌

2010 시즌, 김현수는 개막전에서 4안타를 기록하며 KBO 리그 사상 첫 4할, 200안타의 타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어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부진했다.


2011년 시즌

2011 시즌, 김현수는 0.301의 타율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보다 더더욱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홈런도 24개에서 11개나 줄어든 13개의 홈런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개막 한달 4월간은 0.324의 타율로 선전했으나, 5월 타율 0.260로 주춤했고 6월엔 다시 0.333 의 타율을 마크, 고타율을 유지했고 7월엔 조금 주춤한 0.304의 타율을 마크하였다. 8월과 9월엔 각각 0.295와 0.255의 타율을 마크하며 부진했다. 시즌이 끝나기 몇 경기전 2할 9푼 8~9리 정도의 타율을 유지하던 김현수는 김현수 특유의 몰아치기를 성공, 3할을 마크하였고 시즌 막판 몇 경기는 출장을 하지않고 0.301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하여 4시즌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작년 시즌보다 더 저조해진 성적에 팬들은 실망하였다. 김현수의 기대치에 비한 부진은 소속팀의 4강 탈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삼진도 여전히 많은 63개의 삼진을 기록하였고, 실책은 자신이 기록한 실책 중 가장 많은 7개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보살은 2011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12개의 보살을 기록하였다.


2012년 시즌

2012 시즌, 부활을 노리던 김현수는 시즌 초중반에 들어설 무렵에 나지완과의 욕설파문으로 고난을 겪었다. 이 사건으로인해 KIA팬들은 분노했고 두산의 원정경기로 KIA의 홈 경기장인 광주 무등야구장과 군산 월명 야구장을 방문할 때마다 김현수 선수의 타석이면 야유와 욕설을 하는 등 파동이 있었다. 김현수는 나지완에게 사과를 했고 파문은 끝이 났다. 시즌 초에 홈런 수를 증가시키겠다라고 말했던 계획과는 달리 데뷔시즌인 2006과 본격적으로 출장을 시작한 2007년을 제외하고 2008~2011까지는 3할타율을 마크했던 김현수는 2012 시즌 타율 0.291로 3할타율을 수성하지 못하였고, 홈런은 7개로 지난 시즌인 2011 시즌의 홈런갯수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2011 시즌 홈런 13개) 그야말로 삼못쓰의 경지에 다다르면서 팬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던 적도 있다. 2012년 8월 14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한현희를 상대로 1회에 기선제압 솔로홈런을 쳤지만, 우천으로 인하여 이 기록이 지워지고 말았다.


2013년 시즌

2013 시즌, 2년 동안의 부진을 딛고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였다. 그 결과가 3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원정 개막전에서 5회초 2사만루에서 배영수의 2구를 그대로 잡아당겨 비거리 120m의 만루홈런을 쳐냈다. 이는 2013 시즌 두 번째 만루홈런이었다.(첫 번째는 1회초 오재원이 배영수의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비거리 110m의 만루홈런이었다.) 전반기까지는 2012 시즌보다 1개 더 많은 8개의 홈런을 기록하였고, 팀 내에서는 홍성흔과 공동 1위로 전반기를 마감하였다. 2013 시즌이 되어 배영수에게서만 3개의 홈런을 쳐 냈고, '배영수 킬러'라는 별명이 생겼다. 2013년 7월 31일 사직 롯데전에서 송승준을 상대로 1회 솔로홈런을 치면서 시즌 10호 홈런을 치게 되고 2년만에 2자릿 수 홈런을 달성하였다. 시즌 타율은 0.302, 홈런도 16개를 치면서 개막 직전 부활을 알리겠다던 그의 약속의 반은 지켰다.


2014년 시즌

2014 시즌, 3월 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첫번째 시범경기 첫 타석에서 상대선발 오재영을 상대로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시범경기 첫 홈런을 쳐냈다. 시범경기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기대를 하게 만들었지만, 개막전 이후 부진에 빠지기 시작하다가 서서히 타격감을 올리기 시작하였고, 4월 26일 마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테드 웨버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홈런을 달성하였다. 이는 KBO 리그 64번째 기록이며, 종전 기록은 넥센 히어로즈의 강정호였다. 4월 2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상대투수 손승락을 상대로 개인통산 1000안타를 쳐냈다. 이는 KBO 리그 67번째 기록이자, 역대 최연소 기록인 이승엽, 장성호에 이은 3번째이다. 1000안타의 종전 기록은 한화 이글스의 정근우였다.


2015년 시즌

2015 시즌에는 시즌 초 부터 타격감을 끌어올렸고, 시즌 후반부터는 붙박이 4번타자를 맡으면서 팀 타선을 이끌며 가을야구 진출에 일조했다. 5년만에 20홈런, 6년만에 100타점을 돌파했으며 홈런과 타점 커리어 하이인 28홈런 121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121타점은 두산 베어스 프랜차이즈 역대 한 시즌 최다 타점 신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KBO 역대 6번째로 100타점 - 100득점 - 100볼넷을 달성하면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19타수 8안타 홈런없이 4타점 7득점으로 활약하며 14년만의 우승에 공헌하였다. 시즌 후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 출전한 그는 대한민국의 우승과 함께 초대 MVP로 선정됐다. 2010년 이후 5년 만에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그리고 FA 자격으로 해외진출을 선언하여 2년 700만 달러로 계약을 체결하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2010년 7월 24일 대구에서 열린 2010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G마켓 홈런 레이스에서 7아웃 동안 무려 10개의 홈런을 때려내면서 역대 최다 홈런 레이스 기록과 함께 상금 300만원을 받았다. (이전의 기록 - 타이론 우즈의 2000년 9개 (10 아웃제) . 김태균의 2007년 9개 (10 아웃제)) 또한 2014년 광주에서 진행된 2014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자신의 결선 최다 홈런 신기록인 10개를 경신하여 14개로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리그 시절

2015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여 메이저 리그에 2년 700만 달러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을 맺었다. 계약 당시 로스터 25인에 포함되고 마이너 리그 거부권을 가지는 조건이였으나, 시범경기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감독과 단장이 마이너 리그로 가라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개막전에는 선수 소개때 볼티모어 홈팬들에게 야유까지 받으며 희대의 굴욕을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4월 11일 그의 메이저 리그 데뷔전에서 3타수 2안타를 기록, 한국 메이저 리그 선수 최초로 데뷔전 멀티 히트 경기를 했다.


통산기록


야구 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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